Sunday, August 30, 2015

The Ottoman rulers were greek

Notable muslims of Greek descent (non-conversions)
* Ahmed I -(1590 - 1617), Ottoman sultan, Greek mother Handan Sultan (originally named Helena (Eleni))- wife of Ottoman Sultan Mehmed III
* Ahmed III -(1673 – 1736), Ottoman sultan, Greek mother (Emetullah Rabia Gülnûş Sultan), originally named Evemia, who was the daughter of a Greek Cretan priest
* Bayezid I -(1354 - 1403), Ottoman sultan, Greek mother (Gulcicek Hatun or Gülçiçek Hatun) wife of Murad I
* Bayezid II -(1447 - 1512), Ottoman sultan, Greek mother (Amina Gul-Bahar or Gulbahār Khātun, tr:I. Gülbahar Hatun), a Greek Orthodox woman of noble birth from the village of Douvera, Trabzon
* Hayreddin Barbarossa,(c. 1478 – 1546), privateer and Ottoman admiral, Greek mother, Katerina from Mytilene on the island of Lesbos
* Ibrahim I,(1615 - 1648), Ottoman sultan, Greek mother (Kösem Sultan), the daughter of a priest from the island of Tinos; her maiden name was Anastasia and was one of the most powerful women in Ottoman history
* Mehmed IV, Ottoman sultan, Greek grand-mother, Kösem Sultan
* Muhammad al-Mahdi (ال&#1 573;ما م مح&#16 05;د بن ال&#15 81;سن ال&#16 05;هد& #1609;) also known as Hujjat ibn al-Hasan, final Imām of the Twelve Imams Shi'a, Greek mother, Her Greatness Narjis (Melika), was a Byzantine princess who pretended to be a slave so that she might travel from her kingdom to Arabia
* Murad I, Ottoman sultan, Greek mother,(Nilüfer Hatun (water lily in Turkish), daughter of the Prince of Yarhisar or Byzantine Princess Helen (Nilüfer))
* Murad IV (1612-1640), Ottoman sultan, Greek mother (Valide Sultan, Kadinefendi Kösem Sultan or Mahpeyker, originally named Anastasia)
* Mustafa I -(1591-1639), Ottoman sultan, Greek mother (Valide Sultan, Handan Sultan, originally named Helena (Eleni))
* Mustafa II -(1664-1703),[19][20][21][22] Ottoman sultan, Greek Cretan mother (Valide Sultan, Mah-Para Ummatullah Rabia Gül-Nush, originally named Evemia)
* Oruç Reis,(also called Barbarossa or Redbeard), privateer and Ottoman Bey (Governor) of Algiers and Beylerbey (Chief Governor) of the West Mediterranean. He was born on the island of Midilli (Lesbos), mother was Greek (Katerina)
* Osman II -(1604-1622), Ottoman sultan, Greek mother (Valide Sultan, Mahfiruze Hatice Sultan, originally named Maria)
* Selim I, Ottoman sultan, Greek mother (Gulbahar Sultan, also known by her maiden name Ayşe Hatun); his father, Bayezid II, was also half Greek through his mother's side (Valide Sultan Amina Gul-Bahar or Gulbahar Khatun - a Greek convert to Islam)- this made Selim I three-quarters Greek
* Suleiman I (Suleiman the Magnificent), Ottoman sultan, his father Bayezid II was three-quarters Greek; (Suleiman's mother was of Georgian origin).
* Shah Ismail I, the founder of Turkic-Persian Safavid Dynasty of Iran: Ismā'il's mother was an Aq Qoyunlu (Turkmen) noble, Martha, the daughter of Turkmen Uzun Hasan by his Pontic Greek wife Theodora Megale Comnena, better known as Despina Hatun. Theodora was the daughter of Emperor John IV of Trebizond whom Uzun Hassan married in a deal to protect Trebizond from the Ottomans.
* Kaykaus II, Seljuq Sultan. His mother was the daughter of a Greek priest; and it was the Greeks of Nicaea from whom he consistently sought aid throughout his life.
* Sheikh Bedreddin -(1359-1420) Revolutionary theologian, Greek mother named "Melek Hatun".
* Ibrahim Pasha of Egypt (Arabic: إب&#15 85;اه& #1610;م با&#15 88;ا‎) ‎ (1789 – November 10, 1848), a 19th century general of Egypt. He is better known as the (adopted) son of Muhammad Ali of Egypt. Ibrahim was born in the town of Drama, in the Ottoman province of Rumelia, currently located in the Macedonian region of Greece, to a Greek Christian woman and a man named Tourmatzis.

http://www.topix.com/forum/world/turkey/T66LE74B0EDP09FUF

Thursday, August 27, 2015

아랍음악은 그리스어에따라 음악을 무지키라고 부른다. arabs called music musgi according to greek language.

아랍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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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음악아랍어를 주로 쓰는 아랍 지역의 전통음악을 말한다. 넓게 보면 이슬람 음악과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좁게 보면 터키·페르시아 등의 음악과 구별하여 아라비아 반도(사우디아라비아)의 음악을 뜻한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이웃인 이라크·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스라엘 등 각국의 아랍인 음악도 포함한다. 이슬람 교도의 음악적 영향은 중세 유럽·근세 이후의 인도·동남아시아·에티오피아·수단 등에까지 미쳤으며, 기독교 및 불교의 문명 속에서 자란 음악과 함께 세계의 3대 음악권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


류트는 아랍 지역에서 전파되었다. 1568년도에 만들어진 그림.


역사[편집]

이슬람 이전[편집]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국(敎國) 창립(622)까지의 자연숭배나 우상숭배를 했던 무명시대(無明時代)에도 아랍 음악은 물론 있었다. 유목생활 가운데서 원시적인 노동의 노래나 제전음악(祭典音樂)이 발생했으나, 일찍부터 선진 문명국인 헤브라이와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 이어 데헤자스 지방(홍해와 마주한 반도 북서부)을 중심으로 상업이 번성하여 대상(隊商)의 활동이 융성해짐에 따라 노래(후다)가 발생했다. 2, 3세기에 왕국이 남북에 건립, 궁정에서 직업 음악가나 무희(舞姬)가 활동하고, 또한 악기 하나로 각지를 돌아다니는 음유시인(吟遊詩人)이 중요한 구실을 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후세의 아랍 음악인은 이 시대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아랍인이 메소포타미아나 시리아까지 번짐과 동시에 성지(聖地)를 쫓겨난 유태인이 반도의 서해안에 남하하여 헤브라이 음악이 들어오게 되었다. 또한 사산조(朝) 페르시아(3-7세기)의 음악도 크게 채택되었다. 나슈브(戀歌), 라사(哀歌), 카시그(讚歌) 등의 시(詩)가 생겨났으며, 시인이 작시·작곡을 겸하였다.

이슬람 시대[편집]

622년의 무함마드의 헤지라(메디나 聖遷) 이후의 이슬람 시대는 사라센 제국 시대와 그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으며, 음악사적으로 다시 세분하면 정통 칼리프 시대(622-661), 옴미아드조 시대(661-750)의 융성기, 아바스조 시대(750-1258)의 거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전성기와 그 후반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정체기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융성기[편집]

이슬람교에서는 음악을 금제(禁制)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종교음악은 끝내 생겨나지 못했다. 그러나 세속음악은 궁정·귀족·부호 등의 보호 아래 교의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행하였다. 무함마드의 한 아내는 가희(歌姬) 출신이었으며, 아랍의 대표적 악기가 된 우드('ud)의 보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다. 옴미아드조에 와서는 사라센 제국이 건설되자 수도를 메디나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겨 페르시아나 비잔틴과 교섭이 많아졌다. 그리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채택, 그리스의 과학이나 예술이 시리아어(語)나 아랍어로 번역되어 과학적인 음악이론을 발전시켰다. 이것은 다른 동양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아랍 음악의 특징이 되었으며, 궁정의 할렘이 융성해지고 가희나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 일종의 계급을 형성하여 귀족 및 부호와 유대를 맺었다. 일찍부터 음악이론서도 저술되고 그리스어에 따라 음악을 무지키(Mus gi)라고 부르기 시작하였다.

전성기[편집]

다음의 압바스조 500년 동안의 음악의 전성기는 처음 100년간이라고 하겠으며, 한편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에서 750년 동안 융성했던 옴미아드조에서는 초기 250년 동안이 이슬람 음악의 전성기였다. 압바스조는 바그다드로 수도를 옮겨 공전의 대도시를 만들었으며, 당시의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이나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및 에스파냐의 코르도바와 함께 세계의 4대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과학과 예술이 궁정 귀족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특히 <아라비안나이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제5대왕 하른 아라시도(재위 786-809)의 호화로운 궁정생활 속에는 음악과 무용이 중요한 구실을 다하였다. 이 황금시대에 음악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이론가와 음악가가 배출되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잘잘(Zal Zal)은 새로운 아랍 음계를 발견, 그것이 오늘날 아랍 음악의 최대 특징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는 <노래의 서(書), (Kitabal Aghani)>를 저술하였으며, 알 킨디(al-Kindi, 873년경. 류트의 4현과 리듬적 선법에 대해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는 <음악의 서>를 저술하였다. 후자는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아랍 음악서의 하나가 되었으며 또한 시르야브는 코르도바로 옮겨 코르도바 학파의 다수 명인(名人)이나 학자를 육성하였다.

정체기[편집]

10세기 이후의 동(東)칼리프, 11세기 이후의 서(西)칼리프는 이슬람 음악의 정체기를 맞았으나 이 동안에도 이론가를 배출하여, 특히 음계이론의 연구로는 뛰어난 것이 많았다. 10세기경에 나타난 라바브(rabab)가 보급된 것도 이 시대이며 풍압(風壓) 오르간과 수압(水壓) 오르간이 아랍에서 발달, 유럽에 보급되어 오르간의 역사에 큰 구실을 한 것도 이 시대였다. 몽고인에 의한 파괴가 있은 뒤에 11-13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 계속되는 오스만 투르크 및 티무르의 통치를 받아 서아시아의 이슬람권이 분열하기 시작하자 터키나 페르시아는 독자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여 아랍 본토의 음악과는 이미 그 본질이 다른 국민음악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서아프리카 북쪽 해안 등도 이슬람 음악권으로 들어갔으며 또한 카프카즈의 중계로 멀리 인도 북부나 동인도 제도에도 이슬람교도의 손으로 이슬람 음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키타브 알 아가니[편집]

키타브 알 아가니(Kitab al-Aghani)라는, 노래의 서로 번역되는 이 책은 10세기에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가 저술. 이 책에는 시인과 가수들에 관한 전기(傳記)가 실려 있으며 궁정에서 연주되는 음악에 관한 기록도 있다. 또한 의식적인 기교의 성장과 확실한 여러 가지 형식적 규약과 함께 궁정음악은 대중음악과 유리된 상태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아랍족의 문화사로서 단정적으로 평가할 수 없을 정도의 중요성을 지닌다.

악리 연구[편집]

아랍인의 악리 연구가 결실을 맺은 것은 코르도바였으며, 그리스적·아랍적인 이론이 여기서 완성을 보아 중세 유럽인은 코르도바로부터 배우는 바가 많았으며 중세 음악에의 영향, 특히 세속음악에의 자극이 컸다. 이론가의 제1인자인 알리 알 이스파하니(Ali al-Isfah ni)를 비롯하여 음악 이론가, 철학자 및 과학자로 유명한 알 파라비(Al-F r bi)의 저서인 <음악의 대서(大書)(Kitab al-Musiqi al-Kabir)>가 현존하여, 최근에 프랑스인 엘랑제르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또한 동양의 다른 여러 나라와 현저하게 다른 점은 과학적인 음악 이론이 그리스로부터 들어와 발전했다는 점이다. 음악이론은 예술로서라기보다 과학적인 음악이론으로서 발달한 점이 중국과 흡사하며 아랍의 우드('ud), 중국의 율관(律管)은 그리스의 모노코드(monochord)와 똑같은 기능을 발휘하였다. 근세 인도의 음악이론, 특히 음계론 및 리듬론의 발달도 이슬람의 영향에 의하는 점이 많았다. 우드를 비롯한 현악기에 음의 수리론(數理論)을 반영하여 척도(尺度)가 새겨져 있다는 점도 진귀하다. 음률은 옛날에는 9율(九律)이었다고 전해지나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9율은 4도 음정을 차례로 겹쳐 얻은 음정을 1옥타브 안에 배열시킨 것이다.

선법[편집]

아랍 특유의 전통에 비잔틴과 페르시아의 요소가 가미되는 가운데, 특히 옴미아드 시기(Ommiad, 661-750)에서는 8개의 온음계적 선법 조직의 발생을 볼 수 있다. 음정구조 면에서 이 8개의 온음계적 선법은 유럽의 교회 선법과 유사하다. 비록 그 유사성이 선율적인 데까지 뻗쳤는지는 모르지만, 이러한 조직은 이샤끄 알 마우실리(Ishaq al-Mawsili, 850년), 가수들·작곡가 및 류트의 명인 등에서 그 선법 조직에 관한 훌륭한 점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 류트 명인들은 라이벌 학파가 제창한 새 양식(주로 페르시아에서 발생한 것들)에 대해서 그 조직을 유지해 왔다.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의 제자인 지르야브(Ziryab)도 에스파냐에서 같은 명성을 얻었는데 그는 우드('ud, lute)에 다섯 번째의 현(絃)을 가함으로써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당시엔 고전적인 악기가 퍽 인기였다. 특히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와 그의 문하생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9세기와 10세기 동안에 발생한 양식으로 생각되는 여러 가지 새로운 양식들 중에서 오늘날까지 도입되어 남아 있는 기초 이론인 순전히 3/4 음정의 온음계적(온음과 반음) 선법조직은 큰 영향력을 미쳤다. 이로 인해서 오랜 음조직이 없어지게 되고 다수의 새로운 선법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13세기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30종의 선법이 만들어졌는데, 그 대부분이 3/4 음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것이 중동의 예술음악에 특징적인 면을 남겼다. 또한 13세기-16세기에 걸친 저명한 음악이론가들, 특히 사피 앗 딘 알 우르마위(Safi al-Din al-Urmawi), 꾸트브 앗 딘 쉬라지(Qutb al-Din Shirazi), 압드 알 까디르('Abd al-Qadir), 알 라지끼(al-Ladhiqi) 등은 옥타브 스케일로서 이 선법을 정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 사용되었던 음표 및 음악을 분석하는 방법을 통해 보면, 분명히 당시의 선법이란 것이 보통 4도, 때로는 3도(중간 3도 혹은 장 3도) 혹은 5도를 잇는 작은 단위가 한정된 수의 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선법(Shadd, awaz, 후에 마캄이라 부르게 됨)은 음정이 단순하게 연속해서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자주 나타나는 어떤 일정한 선율형을 지님으로써, 두 개 혹은 뚜렷한 형으로 그 특징이 있는 몇 개의 단위가 일정한 법칙에 따라 융합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첫음과 마침음의 위치가 선법으로 말미암아 정해진다. 즉 마침음이 되는 으뜸음(아래옥타브음)을 가지고 윗단위 선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하고 아랫단위의 선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기도 하는데 흔히 쓰이는 선율형은 위 옥타브의 음으로 시작되게끔 구성되었다. 탐색 과정에(특히 연주자의 기교를 테스트하도록 짜여진 경과구에서) 더 많은 단위를 간결하게 도입할 수도 있는데 조바꿈이 매우 오묘한 효과를 준다.

마캄[편집]

마캄(maqam)은 아랍·터키·페르시아의 음악 용어이다. 본래는 아랍어로 7-8세기경에 아랍에 들어온 여러 나라의 선법을 일컫는 명칭에 불과했으나 아랍 음악 이론의 발달에 따라 그것을 음계의 체계로 집약, 정리하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순전히 음계의 뜻으로, 또는 마침음의 위치에 의한 선법의 뜻으로도 해석되었는가 하면, 전통적인 선율형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해석되어 현재 아랍 국가들 내부에서도 지역마다 다른 마캄의 집약체계를 가지고 있다.

리듬[편집]

리듬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대부분의 아랍 음악인들은 관습에 의한 불가분의 기본적인 시간 단위를 설정한다. 거기에서 이론상의 선율 주기를 도출하는데, 각 주기는 시간 단위의 정해진 수로 이루어지며 그 주기 안에서 센박, 여린박, 그리고 쉼을 잘 배치해 놓음으로써 식별할 수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주기는 길이가 같더라도 극히 명확하다.알 타킬 알 아우알알 타킬 알 타 니연주에서는 몇 개의 쉼표가 들어갈 수 있지만 기본적인 패턴은 그대로 유지되어야 한다. 선율 기법의 발전과 더불어 리듬형의 수도 9세기의 8개에서 16세기에는 20개 이상으로 증가했다. 후자의 20여개 중에는 페르시아인과 터키인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도 몇 개 포함되어 있으며, 한편 수우피(Sufi) 교파의 의식 가운데 포함되었던 아크사크(aksak) 댄스 리듬도 채택된 것이 몇 개 있다. 양식상의 의미를 갖는 '무거운' 리듬과 '가벼운' 리듬의 차이점이 옛날에는 퍽 강했다. 몇 개의 리듬 주기는 굉장히 큰 시간 단위의 수를 포함하는 관계로(작으면 24, 크면 200까지) 많이 쓰이지 못했다. 일반적으로 하나의 리듬 주기는 한 악곡에만 쓰여진다. 한때 압드 알 까디르('Abd al-Qadir, 1435)는 수개의 리듬이 도입되거나 두 개의 리듬이 그 안에서 동시에 사용되는 형식을 시도한 바 있다.

형식[편집]

9세기 또는 이미 이슬람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몇몇 장르로 나뉘는 수많은 형식이 인정됐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당시 사용되던 몇 개의 기법적인 용어들에 대한 의미는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 중 몇 개는 시구(보통 운율)와 노래 사이에 구조적인 상호 관련성이 있었던 것을 암시하지만 시적 운율과 같은 이름을 지닌 리듬 주기 사이에는 확실하게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 뒤늦게 아브드 알 카아디르는 형식에 대한 유익한 설명을 하였다. 한 형식과 그 외 형식들을 구별하여 언급했는데 그 외 형식들이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악곡에 가사가 있거나 없거나, 가사가 있다면 그 독창부가 아랍어이건 페르시아어이건, 또는 그 악곡에 악기의 전주(前奏)의 여부, 형식 자체가 무소절(無小節)인지 혹은 하나(혹은 그 이상)의 리듬 주기를 갖는지, 후렴이 있는지 없는지 등이다. 그가 지적한 형식들 중 가장 중요한 형식은 바시트(basit)와 나쉬드 알 아랍(Nashid al-'arab)이다.

바시트[편집]

바시트(basit)는 압드 알 까디르의 형식이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이것은 주어진 세 개의 리듬 중에서 그 중 하나에 아랍어로 된 독창부가 있으며 악기의 전주가 뒤따른다.

나쉬드 알 아랍[편집]

나쉬드 알 아랍(Nashid al-'arab)에서는 4개의 아랍 운율이 노래되는데, 둘째와 셋째가 성악곡으로 연창(演唱)되는 동안에 첫째와 셋째는 자유로운 리듬으로 불린다.

나우바[편집]

나우바(nawba)는 가장 복합성을 띤 형식인데, 이것은 4악장의 모음곡이다. 제1악장(qawl)과 제4악장(furubasht)은 바시트(basit)를 닮도록 되어 있다. 제2악장(ghazal)은 페르시아의 독창곡이며, 제3악장(tarana)은 아랍이나 페르시아의 4행시(ruba'i)의 곡인데, 바시트로서 동일한 리드믹한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 같은 선율적이고 리듬적인 선법은 4악장 모두에 쓰일 수 있으며 각 악장은 악기의 도입으로 시작될 수 있다.

현대의 아랍음악[편집]

16-19세기의 대부분의 아랍 세계는 오스만 제국에 지배되었다. 이 때는 정치적 내지 문화적으로 쇠퇴기라고 할 수 있다. 궁정에 의존했던 예술 음악은 터키의 고전음악에 많은 영향을 입었지만 터키음악 역시 아랍과 페르시아의 전통에 힘입은 바 컸기 때문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16세기까지의 선법과 리듬은 20세기 예술 음악에 적용할 수 있다. 현대의 마캄(maqam)은 중세의 그것보다는 다소 복잡해졌으나 구조 면에서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이집트에서 이라크에 이르는 지역의 극히 중요한 기악적 형식은 타크심(taqsim)과 바쉬라프(bashraf)이다.

타크심[편집]

타크심(taqsim)은 무소절의 즉흥곡. 보통 여기에는 독창이 자주 나타나지만, 일단의 악기 주자들은 마캄을 계속하도록 돌아가면서 연주한다. 선율악기가 내는 악구 반복 저음의 악구에 의해 리듬주기를 나타내는 가운데 하나의 변형인 타크심의 소절 형식도 보인다.

바시라프[편집]

바시라프(bashraf)는 주로 단절(單節)을 포함하는 간주곡에 의해 분리되는 같은 길이(khana)의 4악절로 구성되는 소절 형식인데, 간주곡은 앙상블로 연주되며 각 악절은 여러 독창자에 의존한다.

아랍음악의 주요 악기[편집]

역사적 관계로나 풍토의 근사성으로 보아 아랍 악기는 인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랍 특유의 우드('ud), 라바브(rabab), 나카라(naqqara)를 중심으로 하는 악기편성은 인도 고유의 비나(v na), 사랑기(s rangi), 타블라 바야(tabla-bahya)를 위주로 하는 인도의 악기 편성과 엄격히 구별되어야 하며, 또한 과학적인 악기가 악리상(樂理上)으로도 나타나 있다는 점에서 동양에서는 그 유례가 없다고 하겠다.

우드[편집]

우드('ud)는 아랍 특유의 나우바(nawba)를 연주할 때 사용되는 발현악기(撥絃樂器)로서, 보통 5현 구조로 되어 있다. 최저현 이외는 모두 겹줄이며, G-A-d-g-e의 순열로 맞춘다. 그러나 현의 수효는 4현에서 6현까지 있으며, 조현법(調絃法)도 4도를 기본으로 한다. 최고·최저현에서는 여러 가지 음정이 되고, 그 종류가 많다. 연주할 때는 새의 날개깃으로 만돌린처럼 퉁긴다. 원래 페르시아에 기원을 둔 이 악기는 10세기 이후, 아랍 음악에서는 중요시되어 왔고, 고래의 이론서의 대부분이 이 악기를 기초로 음계이론을 고찰하고 있으며, 페르시아의 음악뿐만 아니라 12세기 이후의 남유럽(특히 에스파냐)이나 동유럽에서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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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브[편집]

라바브(rabab)는 아랍의 찰현악기(擦絃樂器)로서 우드와 같이 아랍의 대표적인 악기. 이 악기는 아랍에서 페르시아와 터키로 전해졌으나, 거기서는 케만체라고 불리고, 그 형태도 많이 변하였다. 인도네시아나 타이에도 아랍의 라바브와 흡사한 형태의 악기가 전해졌고, 중국의 호궁(胡弓)이나 몽고의 마두금(馬頭琴) 등도 같은 계통의 악기이다.

카눈[편집]

카눈(qanun)은 아랍·터키의 고전음악에 사용되는 치터족(Zither族)의 발현악기이다. 엷은 상자 표면에 78개의 양장(羊腸) 또는 나일론 현을 매고 좌우 집게손가락에 끼운 골무로 연주한다. 아랍 음악사를 통해 가장 중요시되는 우드 다음가는 현악기로 치며, 현의 왼쪽에 달린 장치에 의해 미소한 음정의 조절이 가능하여 많은 마캄에 조현(組絃)하여 연주할 수 있다.

탕부르[편집]

탕부르(tanbr)는 서아시아 및 동유럽에서 사용되는 긴 넥(棹)을 가진 류트족(lute族)의 발현악기이다. 지방에 따라 형태나 주법에 얼마쯤의 차이가 있으며, 종류가 많은데 대부분 긴 넥에 17-26 정도의 플렛이 있고, 3-6개의 현을 나무껍질이나 새의 죽지, 뿔조각, 플라스틱 등의 골무(플렉트럼)로 퉁기는데, 주로 무도나 노래의 반주에 사용된다.

나카라[편집]

나카라(naqqara)는 음높이를 달리하는 2개조의 솥형 북이며, 이란 등 아랍 여러 나라에서 보게 된다. 대형의 것은 말 위에 달게 되며, 그것이 팀파니로 되었다.

다라부카[편집]

다라부카(darabuka)는 꽃병 형태의 나무 또는 흙으로 만들어진 통(胴)의 단피고(單皮鼓)로서, 왼쪽에 끼고 오른손으로 친다. 이것이 타이로 건너와서 톤이라든가 타프 등으로 불리고 있다.

타르[편집]

타르(tar)는 이집트, 시리아 등의 대형 단피고(單皮鼓)이거나 방울 없는 탬버린의 대형북이다. 그러나 타르는 북의 의미로서 널리 쓰이며 방울 달린 탬버린으로 불린다. 또 이란의 타르는 현악기의 이름으로도 되어 있다.

다프[편집]

다프(daff) 또는 데프(deff)는 히브리어로는 토프(tof)라고도 불려서 유래가 깊은 악기이다. 탬버린의 별칭이다.

나이[편집]

아랍에서는 피리를 흔히 나이(nay) 또는 네이(ney)라고도 부르며, 갈대피리도 사나이, 스루나이, 그리고 중국서는 소오나 등으로 불리며 동방으로 전파되어 왔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B%9E%8D_%EC%9D%8C%EC%95%85

Monday, August 24, 2015

그리스역사 잘모르는놈과의 대화 comment



 

polykl.. 내 기억으론 여태까지 D1이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은 충청도 지역이다란 -->근거는?!? 173.73.*.* 2015.08.21 18:34:2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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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지나족은 한족 한족은 티벳고원에서온 중국어족 o3... o2a의 원류는 크메르족 크메르족이 북쪽으로 간게 바로 비엣족 중국남부의 o2a는 베트남피....지나족이 쳐들어와서 섞임.... 173.73.*.* 2015.08.21 18:36:4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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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O1이 월인이라하고 지나가 O2라고 했는대....o1은 민월족이고...o2는 백월족인데.... 173.73.*.* 2015.08.22 06:48:5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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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poly/충청도 자료는 니가 찾아보세요. "지나족은 한족 한족은 티벳고원에서온 중국어족 o3... o2a의 원류는 크메르족 크메르족이 북쪽으로 간게 바로 비엣족 중국남부의 o2a는 베트남피...." <==근거는? 182.213.*.* 2015.08.23 21:32:3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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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중국역사 살펴봐봐 난 중국에 관심없었지만.....베트남친구들이있어서 들은얘기를 인터넷으로 뒤져보니 알게된거....비엣이 바로 백월의 배트남어임....o2a가 크메르 하플로이고.... 173.73.*.* 2015.08.24 18:42:0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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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베트남의 역사는 한나라 장군이 기원 전후에 월지역에 세운 나라로부터 시작..그 중국계왕조와 투쟁과정에서 베트남족이 성장..그래서 베트남 애들 입장에서 지들 유리한대로 그렇게 지껄이고 있는 것임, 지금의 베트남은 o2a와 o1계통이 짬뽕된 것으로 볼 수 있음, 공부 더해서 니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렴. 그리고 O2a의 주류는 인도차이나에서 태국과 라오스에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웬 크메르족? 태국과 라오스족 어디서부터 유래한 종족인 줄 아냐? 운남,사천등에서 인도차이나로 내려 간게 아직 1000년도 안된 나라들.. 182.213.*.* 2015.08.24 19:21:58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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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캄보디아도 02a인데....캄보디아사람들이 동남아 원주민임....중국에있는 O2a는 캄보디아인들이 올라가서 베트남사람이 된걸로 보임....글고 충청도지역에서 D1많이나왔다는 자료좀 줘봐봐....보구싶어서그려.....내가 충청도 사람이라.... 173.73.*.* 2015.08.25 06:11:5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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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어그로 끌다 베트남,타이,라오스등의 역사를 알려주니 캄보디아"도" O2a라고 살짝 말을 바꾸네. 캄보디아는 타이,라오스족이 남하하기 전부터 있었던 말레이계 영향이 짙은 크메르족이 바탕인데 또 우긴다. 그래서 타이,라오스는 지금도 말이 통하지만 캄보디아는 말이 안통하는 다른 언어를 씀. 운남,광시,사천등에서 이동해간 O2a다수 타이,라오스족과 캄보디아족이 동족이라면 언어도 비슷해야 하고 생김새도 비슷해야지 말야. 캄보디아인들은 한눈에 봐도 타이,라오스와 확연히 구분되는 외모임. 그리고 O2a, O1계통은 중국남부지방이 원고향일 가능성이 크다고 대체적으로 보고 있는데 뭔 개솔을 계속해대는지.. 무식한 데 똑같은 개솔만 나불거리는 넘들만큼 대책이 없는 넘들이 없지. 충청도자료는 카페에서 니가 찾아봐. 182.213.*.* 2015.08.25 08:58:4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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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말레이계라는게 인종구분법있었는데 말야....그거 얘기하는게 아니잖아...하플로그룹?!? 그거 얘기하는거잖아...타이족은 원래 오스트로네시안계언어임 근데 중국인들이 와서 섞인거 같음...근데 그 중국쪽에서 오스트로네시아계통언어를 쓰던 타이족이 동남아쪽으로 내려오면서 원주민인 크메르족 O2a인가랑 섞인거.....그닌깐 외모가 다른건 당연하고 역사가 좀 복잡한거고....크메르어는 베트남어 몽족이랑같이 오스트로아시아어족...카페면 그생각하는게 단순한 젝쉬가 운영하는 네이버 하플로그룹 그카페 얘기하는건가?!? 자료 링크좀 걸어죠 여기에 대해서 하나도 몰라T-T 173.73.*.* 2015.08.25 09:47:5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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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진짜 이 벽창호 대책이 없네. 지금도 운남,사천,광서 등 중국남부에 O2a가 주류인 타이계 민족이 엄연히 살고 있는데 뭔" 크메르족 O2a랑 섞인 거 같음"이야 ? 떠라이넘이네 이거..그리고, 크메르가 O2a본산이라면 크메르의 O2a비율이 타이나 라오스계의 그것에 비해 현저히 높아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거든요. 단편적으로 주워들은 불확실하고 틀린 정보 쪼가리 갖고서 무모하게 계속 우겨대는 짓을 하는 것은 니 모계가 혹시 베트남계라 그런 거 아니냐? 뭘 기본적인 사항을 알고 우기든가..카페는 다음 분자인류학 카페이고 거기서 분명히 전에 봤기 때문에 니가 찾아보라고 임마, 넌 손이 없냐? 182.213.*.* 2015.08.25 09:55:22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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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캄보디아 하플로자료는 본적이 없지만 O2a의 본고장인 캄보디아가 제일 높은게 당연한거 아닌가?!? 중국남부에 O2a많은건알지만 그건 캄보디아에서 위로 확장해가서 그런거지... 173.73.*.* 2015.08.25 09:58:42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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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원래 타이언어는 오스트로네시안계 언어 바탕인것으로 사료됨... 중국에있는 O2a는 동남아에서 올라온 크메르족이랑 섞인거겠지....현재 하플로에서도 태국인들 O1이 높던데 이게 타이언어의 본바탕인 오스트로네시안 하플로그룹이고 중국에서부터 지니고 동남아로 들어온거지.... 그리고 원래 태국 라오스땅은 크메르인들 즉 현재 캄보디아인들 땅이었고 동남아 원주민이었던 크메르족(O2a)와 타이족(O1+O3+O2a)과 섞인거지... 원래 현재 터키인들이 그리스원주민이듯이 현재 태국 대부분은 사실 캄보디아인임...이해가감?!? 173.73.*.* 2015.08.25 10:19:4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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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 개솔 캄보디아 자료를 본적도 없는 인간이 캄보디아 하플로 자료에 대해서 시부리고 있는 니 자신이 안쪽팔리세요? 황당한 인간이네 이거..이런 등쉰같은 무모함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건가요? 아무래도 똥고집으로 유명한 베트남 니 모계에서 왔나 봅니다. O2a는 양자강 하구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추정이고 그게 합리적인데 캄보디아 하플로 자료도 본적이 없는 넘이 쪽팔린 줄 모르고 아주 망상의 나래를 죽어라 펼치는구먼. 그리고 O1 비율이 높은 데는 니 엄마 고향인 베트남입니다. 망상도 기본은 지키고 해야 봐줄만하지. 별 들떨어진 넘을 다 보겠네. 182.213.*.* 2015.08.25 10:28:58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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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그리고 터키 얘기는 갖다 붙일 데 갖다 붙이세요. 터키인들은 일반적 관점에서 그리스원주민도 있고 아랍계도 그에 못지 않게 있고 이란계도 있고 하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그리스 원주민이다라고만 할 수 없음. 그리고 최근에 터키학자들이 주장하는 게 아나톨리아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리스계가 아니라 투르크계였다는 주장인데 이것에도 상당히 일리가 있음. 어쨌든 치앙마이 왕조등이 크메르족을 남부쪽으로 구축하고 세운 타이나 라오스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임. 진짜 무식, 무모한 넘들에게 어설픈 지식은 선무당으로 가는 지름길임. 182.213.*.* 2015.08.25 10:42:48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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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무슨 내가 알고 있는 정보를 가르쳐주는데 똥고집이래....그리고 울엄마는 한국사람인데 필리핀 사람닮았다 그런거지...아나톨리아는 역사대대로 그리스땅이고...현재 터키인들 99퍼센트는 원래 그리스에서 살고 있던 그리스원주민(E1b1b,J2) 맞음... 먼또 투르크계야 투르크는 극동아시아에서 고구려랑 형제어쩌고하던 몽골족인데....아예 나이지리아 사람이 한국계라그러지...ㅋㅋㅋ 173.73.*.* 2015.08.25 11:12:4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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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니가 알고 있는 정보가 잘못된 게 많고 구닥다리인 슈레기라서 그렇죠. 기본도 모르면서 니 대가리에서 창작한 망상도 정보에요? 아나톨리아가 무슨 역사대대로 그리스땅? 똥 싼다 진짜..아나톨리아에 있었던 트로이만 해도 그리스계가 아닌 나라였다는 게 최근 학설들이더구만. 그리고 그동안에 페르시아, 아랍이 수도 없이 점령을 했는데 뭔... E1B1b, J2 처 얘기하는 것 보니 이 무식한 망상가넘은 아이누를 그리스계 백인이라고 시부리는 대책없는 인간이구만. 투르크가 극동아시아라니 카자흐, 우즈벡, 키르키즈가 극동아시아냐? 투르크 얘기하는데 뭔 한국계 드립? 정박아가 꼴갑은 있는대로 떠네. 꺼져라 동남아 잡종색갸! 니가 잡종이니 비참한 현실을 탈피하려 망상 계속 반복시전하는거겠죠.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1:28:3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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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아나톨리아가 역사대대로 그리스땅인건 상식인데 무슨 이걸 부정하는 놈들이 많냐....무슨 역사 조작하는 게르만족새끼들이랑 거기에 세뇌된 한국놈들은 상식으로 알려진게 지들 역사조작에 맞지않으니 상식을 무한부정만하네 트로이는 애초에 뿌리부터가 그리스계지만 니가 게르만학자놈들이 날조하는데로 배운대로만 쳐도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게 1500bc인데 이게 역사대대로 그리스땅이 아니냐?!? 수학못해?!? 아이누계는 유적관계로만봐도 그리스계 맞고요 또 유적관계로만 알려졌던게 유전학으로도 입증되었고(E1b1b--->D)...투르크가 극동아시아든 뭐든 아시아역사에 별루 관심없고 몽골종자잖아...ㅋㅋㅋ 그리스계를 투르크 몽골종자라고하는게 나이지리아가 한국계라고 하는거랑 뭐가다르냐...ㅋㅋㅋㅋ 173.73.*.* 2015.08.25 11:38:0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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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e.. 그리고 아랍인들은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의 후손이고, 그리고 언제 아나톨리아를 아랍인들이 점령을해ㅋㅋㅋ 페르시아가 점령한적은 있지만 ㅋㅋㅋㅋ 그리고 점령한다고해서 거기에 페르시아인들이 섞인건 거의 없어.... 173.73.*.* 2015.08.25 11:42:11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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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페니키아도 사실은 그리스 펠라스기아인들이 세운나라야.....팔레스타인의 필리스티노이도 그리스 펠라스기아인들의 후손들이고...이름도 비슷하지?!?...페니키아 글짜도 사실은 원래 그리스인들이 쓰던 문자를 페니키아인들이 받은걸 시간이 지나서 그리스 본토에서 그문자가 읹혀지자 다시 페니키아로부터 받은건데 페니키아로부터 그리스가 받은것만 강조하고 애초에 페니키아가 그리스문자를 쓰는거는 게르만족학자들이 일부러 은폐하지... 173.73.*.* 2015.08.25 11:45:4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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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이 뇌빙쉰 색기는 대책이 없구만 대책이..다른 얘기 다 떠나서 아나톨리아 반도를 그동안 페르시아, 아랍, 몽골등 수많은 민족에 의해 지배권이 수도 없이 갈렸다는 게 팩트인데 뭔 대대로 그리스땅 드립? 이 색기 완전 뇌병변 장애자 등쉰색기네 이거.ㅋㅋㅋ.아이누계 그리스계 드립질에다 "(E1b1b--->D)"란 황당한 개그까지 처하는 젓붕쉰에게 더 이상 뭔 말이 필요하겠냐? 아시아역사에 대해서도 조또 모르고 뇌병변 장애자임을 시전하니 투르크=몽골종자라고 또 무식한 쉽소리 시부리죠. 하플로 J계통도 투르크의 상당부분을 차지합니다 똘팍 뷩쉰님!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1:47:0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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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이 색긴 그리스 환타지빠 뇌병변 장애자구만. 디져라 색갸! ㅋㅋㅋㅋ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1:49:2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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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그러니까, 페르시아 점령하면 페르시아 군은 고자로 유전자를 못남기고 그리스계가 점령하면 전부 반대라 전부 그리스계로 바꿔버린다 이거구만. 참 젓빙쉰 환타지빠도 여러가지로 처하네.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1:52:02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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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페르시아는 지배한적이있지만 아랍이 언제 지배해?!? 아는것도 없으면서 없는소리 지어내고 있네 ㅎㅎㅎㅎ 투르크가 아랍을지배했겠지...그리고 하플로 J는 섞인거지 남아공사람이 R1b나오면 유럽에 있는 R1b가 남아프리카하플로냐?!? 단순한 생각하곤.... 173.73.*.* 2015.08.25 11:52:0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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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점령한거랑 원래 나라인거랑 같은가?!? 그리스가 점령한게 아니라 원래 그리스인들이 살던곳이잖아.... 잉글랜드사람들이 잉글랜드를 점령했냐?!? 173.73.*.* 2015.08.25 11:53:05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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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그리스가 파키스탄 점령해서 파키스탄이 파키스탄인과 여러 그리스인들의 혼합이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왜 맨날 섞이지도 않은 그리스한테만 섞였다고 강조하고 난린지...이게 다 그리스를 자신들과 동류의 역사인척할라고 하는 게르만족학자들의 음모때문이겠지만.... 173.73.*.* 2015.08.25 12:06:45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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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비잔티움 주위 지역을 제외한 동부 산악지대쪽은 아랍인이 침투, 점령해 살았거든요 정박아님! 또, 투르크 터키가 서부 아나톨리아 정복할 때 주변의 아랍족들을 대다수 동원했고, 심지어는 셀주크 투르크를 이은 오스만 투르크의 경우 그 왕조 자체도 아랍계였을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뭘 제대로 깊이 알아야 그리스 판타지빠를 해도 덜 쪽 팔리는거죠. 그리고 잉글랜드는 잉글랜드사람들이 원주민이었던 켈트족을 몰아내고 점령한 것 맞거든요 정박,아님? , 아주 코메디를 하세요.ㅋㅋㅋㅋ 그리고 그리스인들의 원류라는 도리아인들 자체도 동방에서 이주해 간 투르크계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최근 나오는 이론들이더군요 뇌병변 환타빠님!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2:32:4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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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그리스인들이 아랍지역에 헬레니즘시대때부터 1000년넘게 같이 섞여살았었고....그리스땅에 무슨 아랍인이 침투해서 살아 ㅎㅎㅎ 아는것도 없으면서 판타지 아랍 판타지빠가 없는얘기지어내고 있네.....아랍족들을 대다수 동원한건 맞는데 누가 아니래?!? 근데 정복했다고 섞였다는건 뭐야 섞인적이 없는데 근데 니들 무식한 한국새끼들은 왜 그리스가 아랍정복했는데 아랍은 그리스랑 혼혈이란 소리는 안하냐?!?ㅋㅋㅋ 사실 혼혈맞구, 아랍인들은 본래가 이오니아 그리스인들의 후손이거든요...그리고 잉글랜드 사람들은 앵글로섹슨 얘길 말하는게 아니거든요...그냥 지금 잉글랜드 사람이 잉글랜드를 점령했냐고 한거거든요?!? 도리아인들은 그리스인들과는 상관없고 언어에 영향을 미쳤지만 투르크계가 아니라 슬라브계겠지...이젠 몽골 투르크를 173.73.*.* 2015.08.25 12:45:1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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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가 그리스땅이라고 역사대대로 어쨌다고 기본 베이스를 처깔고 들어가는 그리스환타지빠색희한테 뭔 말이 통하겠냐? 아는 것도 진짜 쥐뿔도 없는 환타지빠색휘가 사돈남말하는 것 처보소! 그러니까 그리스가 정복하면 혼혈정복, 남들이 그리스 정복하면 안섞이는 정복이란 개쉽소리를 나불거리죠. ㅋㅋㅋ 이오니아 개솔인 니가 망상해낸 또 다른 아이누=그리스백인 개솔이겠고..잉글랜드 얘기는 그런 식으로 한 게 맞는데 뭘 둘러대 등쉰색갸? 도리아인들이 그리스인들과 상관없다면 알렉산더도 그리스와 상관없는 넘이겠구먼.ㅋㅋㅋ 도리아인들의 언어, 풍습등이 고대 투르크와 아주 흡사한데 뭔 슬라브 개솔? 그것도 역시 그리스 환타지빠인 뇌병변 환자 니 망상이겠죠. 아무튼 아이누=그리스계 백인 개솔이나 처시부리는 너님은 앞 182.213.*.* 2015.08.25 12:53:2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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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으로 니 쉽댓글 내 글에 처달지 마세요. 아주 지대로 멍청도 벽창호색기네 이거..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2:54:1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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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학교에서배우는 기본 역사상식을 환타지 소설이라고 할정도로 그리스 역사를 날조할라고그러네ㅋㅋㅋㅋ 너는 3000년이 역사대대로가 아니냐?!? 바본가...그리스땅을 터키이슬람새끼들이 나중에 들어와서 자명한사실을 아니라고 부정하는 판타지논리는 열렬히 지지하는 새끼가 기본 역사상식을 판타지라고 착각하고 있는정도라니 ㅎㄷㄷ 아나톨리아 반도 전체가 그리스땅이지 역사대대로 애초에 헬라스전에는 그리스인들의 분국이었고.... 173.73.*.* 2015.08.25 12:57:2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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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도리아인이랑 알렉산드로스대왕이랑 먼상관이야...멍청한 경상도놈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몽골투르크를 이젠 인도유럽어족으로 만들라하네 완전 투르크환빠정신나간새끼 ㅋㅋㅋㅋ 173.73.*.* 2015.08.25 12:58:52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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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몽골사람을 이젠 그리스인이랑 오토만시대때 섞였다고, 몽골인의 그리스인의 원류로 만들어?!? ㅋㅋㅋㅋ 인디안들한테 R1b나온다고 인디안이 켈트족의 본류라고해라...지가 손나 황당한 환타지쓰면서 기본역사를 환타지라고 하면서 부정할라그러네 완전 개무식한 전형적인 지가 역사잘안다고 착각하는 전형적 무식한 한국새끼... 173.73.*.* 2015.08.25 13:02:28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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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아이누는 생긴거부터가 그리스인이랑흡사하고, 역사유적으로 그리스후손임이 예전에 밝혀졌고, 또 유전학으로도 다시한번 밝혀졌는데요...잘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173.73.*.* 2015.08.25 13:06:5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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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이 그리스판타지빠 색희 졸라게 끈질기네 하긴 그리스환타지빠를 하려면 그 정도는 해야 어디 가서 지대로 빙쉰취급 받겠죠. 니 말대로 3000년 정도만 놓고 봐도, 이미 기원전 500년도대에 페르시아족이 아나톨리아아반도의 서쪽 해안가 그리스 도시들을 싸그리 점령한 적도 있고 그 이후 페르시아가 바다를 건너 그리스 본토까지 침입하려 한, 유명한 페르시아전쟁도 있고..근데 뭔 역사대대로 그리스땅? 하여간 이 색기는 거꾸로 모든 것을 얘기하는데 도가 튼 판타지빠네. 진짜 학교에서 배우는 기본 상식조차 무시하고 그리스 역사를 날조,지만의 환타자사로 만드려 발광.., 도리아인은 그리스 북쪽에 살던 종족으로서 지금도 그 실체에 대해 논란이 많이 되고 있는데 그리스는 북쪽 지역인 마케도니아지방에서 일어난 알렉산더대왕을 당 182.213.*.* 2015.08.25 13:10:3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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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왜 겨우 몇백년 페르시아족들이 점령했다고 그리스가 그리스가 아닌게 되냐?!? 그럼 아랍이랑 북아프리카는 그리스가 거의 1500년넘게 다스렸는데 아랍이랑 북아프리카가 아니라고 안하냐?!? 손나 완죤 시각이 틀어져있네.... 173.73.*.* 2015.08.25 13:13:5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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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연히 지들의 자랑스런 조상이라 생각하지만, 지금의 마케도니아란 나라에선 또 자신들이 그 연고권을 갖는다라고 주장할 정도로 정체성이 애매한 게 사실..그런데 최근엔 이 도리아인의 언어, 풍습등을 지대로 연구한 학자에 따르면 투르크족 계열이라고 설득력잇는 주장을 전개...아무튼 이 등쉰색기는 투르크=몽골로 생각해서 몽골드립질까지..얼마나 무모,무식하면 이 정도가 되나? D1이 중심인 아이누가 이 하플로랑 거의 상관없는 그리스계다라고 누가 유전학적으로 증명을 해 등쉰아? 그리스환타빠 박약아인 니만 나불거리고 있는거지요. 진짜 대책없는 마구잡이색기네 이거..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16:39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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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도리아인은 그리스인들이랑 상관없다고요...미친 야만 게르만족 새끼들이 그리스가 자기들이랑 원류가 같은척할려고 날조한 역사에 개세뇌되있네 멍청한사람...ㅋㅋㅋ 173.73.*.* 2015.08.25 13:16:48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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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도리아인들이 그리스북쪽에 정착했다고 그리스가 도리아인이랑 상관있으면, 인도는 아예 앵글로색슨족이라고 그러고 부처 악마숭배자는 앵글로색슨이라고 그러지아예?!? 환빠 판타지쓰네... 173.73.*.* 2015.08.25 13:18:0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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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지가 투르크=안드로노보 인도유럽어족으로 생각하고있네...투르크가 몽골이지 몽골인게 언제 판타지가 되었냐?!? 하하하하하 173.73.*.* 2015.08.25 13:19:11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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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ㅋㅋㅋ 이제 말바꿔, "역사대대로"에서 "겨우 몇백년"? 에라이 등쉰 박악야 색갸! 아랍이랑 북아프리카를 그리스가 언제 1500년 넘게 지배해? 로마가 그리스냐 색갸? 하긴 로마의 건설자도 투르계일 가능성이 크다고 하더라만.. 너 쉽탱아 조까는 똑같은 개솔 반복하려면 댓글 그만 처닫고 아닥하세요. 조또 모르면서 우기며 환타지 쓰다 지적해주면 살짜기 말을 바꿔 계속 똑같은 개솔 반복 시전...조까튼 뇌병변 벽창호색희네 이거.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20:0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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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내가 언제 말을 바꿔 언어장애야...북아프리카랑 아랍지대에 그리스인들이 이주해살아왔었고 그리스시대때부터 로마(비잔틴)시대까지 북아프리카사람들이랑 아랍사람들은 그리스문화를 공유하고 살았거든요 무식한놈아....그리고 북아프리카인들은 그리스 펠라스기아인들의 후손들이고....역사무식한놈아... 173.73.*.* 2015.08.25 13:22:42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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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그리스환타지빠가 알렉산더도 그리스역사에서 팔아처먹는구먼.ㅋㅋㅋ 도리아인 투르크인 설은 게르만족 학자가 아니라 중앙아시아 투르크 학자들과 국내의 일부학자들도 주장하는 학설인데 뭔 게르만족 드립 주구장창? 누가 언제 투르크=안드로노보 어쩌고라 시부렸는데? 이 색기 하두 처맞으니 헛것이 처보이기까지 하나보구먼. 이 칠푸니 정박아 색갸! 몽골과 투르크는 엄연히 다른 종족인데 진짜 투르크=몽골이란 개판타지를 왜 그렇게 주구장창 나불거리며 개쪽을 파시는겁니까? 진짜 쌩똘아이 색기네 이거. 사서 븅쉰되는 것도 참 저렴하게 한다.ㅋ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24:3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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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그리스가 역사대대로 그리스라그런거하고 페르시아가 그리스 몇백년 겨우 지배한게 역사대대로에서 몇백년으로 말바꾼거니?!?ㅋㅋ 173.73.*.* 2015.08.25 13:24:41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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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투르크는 몽골이고 이 환타지소설아...ㅋㅋㅋ 몽골을 백인으로 바꿀라하네 내참어이가없어서....투르크에 안드로보인들이 혼혈된거겠지...뇌장앤가?!? 그리고 도리아인은 소수침략자고 그리스인들이랑 상관없다고요...유전학에서도 딱나오는구만 알지도못하면서 게르만족들이 날조 역사 교과서읽고와서 설명해줘도 계속 이상한소리 쳐하고있어... 173.73.*.* 2015.08.25 13:26:52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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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투르크는 고구려몽골족이랑 형제하고 살았다하던데 ㅋㅋㅋㅋㅋㅋㅋ투르크를 이젠 백인으로 만들라그래 완죤 ㅋㅋㅋ어이가없어섴ㅋㅋ 173.73.*.* 2015.08.25 13:27:3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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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어울려 이주해 산" 게 지배한 거냐 등쉰색갸? 그리고 되려 아랍의 문화를 그리스나 로마가 수입해 갔다는 게 최근의 주장입니다. 그리고 북아프리카인들이 그리스인의 후손 어쩌고는 니 판타지대갈에서 나온 등쉰 개소리고요...역사대대로와 겨우 몇백년 지배가 양립하는 단어냐? 그러니 말을 살짝 살짝 바꿔 개솔 나불나불...쉽댕아 그러니까 조까는 소리 그만하고 도대체 어떤 학자가 "유전적으로" 아이누인이 그리스계다라고 했는지 근거나 퍼와봐. 세계에 너같은 쉽또라이가 또 있는지 한번 구경해보자.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28:51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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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이 색기 이젠 지혼자 횡설수설 대며 남이 하지도 않은 말도 했다 어쨌다 혼자 달달이질이네. 쉽둥쉰님! 미친 판타지 떵대갈인 니 대갈이 말고 도대체 어떤 학자가 투르크=몽골이라고 했는지 알려줘 보세요. 그리고 투르크는 고구려몽골족이랑 형제하고 살았다는 건 니가 좋아하는 환타지 망상론에서 나온 얘기인데 뭔 또 개쉽소리입니까?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31:5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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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어떤 학자가 투르크가 몽골리안이 아니라고 하지?!? 투르크 고구려몽골족이랑 형제하고 살은건 한국에서 널리 말해지던데...ㅋㅋㅋ 같은 몽골이닌깐 형제겠지 ㅋㅋㅋㅋ 173.73.*.* 2015.08.25 13:33:2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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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아랍의 문화를 무슨 그리스로마가 수입해가 판타지주장을 믿고있네....푸하하하 야만족 아랍이 문화 미술 음악 의학 천문학 수학 과학 건축 등등을 그리스에서 배운건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인데...반대로 날조를 막하네 판타지새끼갘ㅋㅋㅋ.북아프리카인들이 그리스인후손이라는건 판타지가 아니고 사실이고요...아이누가 그리스인들 후손인건 유전적으로 E1b1b-->D... 173.73.*.* 2015.08.25 13:34:18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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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수학, 건축학, 천문학 이것들은 아랍의 유산이 굉장히 크다는 것은 서구에 편향된 서구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인데 너같은 그리스판타지빠 박약아 색기가 받아들일리는 없겠고, 어쨌든 "E1b1b-->D"이란 무식한 쉽소리가 어디 하플로연구에서 나온 것이며 어떻게 일본에 유입된 것인지 근거를 얘기해보세요 개쉽소리 판타지만 쓰지 말고...ㅋ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36:34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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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은개솔 쉽대가리 개초딩 색기님! 몽골리안=몽골족이라고 생각하니 니가 초딩보다 못한 기초를 가진 뇌병변 장애자 환타지빠라가 하지요. 아주 개그의 막장을 달려보세요 어디 계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82.213.*.* 2015.08.25 13:38:0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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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서구라는 그리스를 포함하는 거자체가 게르만족학자들이 만든 허구개념이고 그리스는 게르만족과 전혀 역사적 관계가 없구 그냥 야만인으로만 봤지...그리고 서구게르만학자들은 그리스역사를 날조하면서 아랍에 편향된게 사실이지 그반대가 아니라 그리스문화가 워낙 압도적인 역사상 최고의 문명이기에 그것만큼은 서양학자들이 부정못하는거고...E1b1b-->D가 왜 무식한 소리인지 그냥 딱봐도 자명하구만 난하플로에 대해선 모르지만 하플로 기본 상식에도 적혀있던데....너가 설명은 못하겠고 부정하고 싶으닌깐 그런거겠지...ㅋㅋㅋㅋ 173.73.*.* 2015.08.25 13:43:30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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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그리스음악이 아랍에서 반대로 그리스로 퍼진줄 알고 착각하는놈들이 많은데 그리스는 여러 문명 학문 문화뿐아니라 음악도 헬레니즘시대떄 당연히 그리스에서 아랍세계로 퍼졌구 이거 봐라 https://www.youtube.com/watch?v=hKABwoWrMAA 173.73.*.* 2015.08.25 13:45:07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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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밑에 댓글도 읽어보구 ㅋㅋㅋㅋㅋ 173.73.*.* 2015.08.25 13:46:0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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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그유명한 플라토 에우클레이데스 소크라테스 헤로필로스 피디아스 히포크라테스등등을 다른 그리스문화와함께 서구에 전해준게 아랍인데ㅋㅋㅋㅋ 손나 황당한 주장 칵 토나와... 173.73.*.* 2015.08.25 13:50:21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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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Arabs translated and developed Greek texts and works of music and mastered the musical theory of the music of ancient Greece (i.e. Systema ametabolon, enharmonium, chromatikon, diatonon).[1] 173.73.*.* 2015.08.25 13:52:03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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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ykl.. 아랍은 그리스의 음악과 고대 그리스 음악 이론인 시스테마 아마타볼론 엔하르모니움 흐로마티콘 이다토논등을 배웠다[1] 백과사전에 나온 내용 안는 사람도 별루 없더만 교과서에 나와도 무조건 정치적 목적에 혈안되서 반대로 말하기에 세뇌된 새끼들만 대중에 수두룩하지... 173.73.*.* 2015.08.25 13:53:36 삭제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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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 August 20, 2015

충청도가 아이누 유전자가 제일 많이나온다.

제 목

듣보잡이 본색을 드러낸건가? ㅋㅋ

글쓴이
객관은개솔
조회
51
댓글
0

  • 2015-08-20 18:10:58
  • 182.213.*.*


듣보잡 니 모계가 쌍도쪽이지? 아니면
부계가 동학란 때 전라도 동학혁명군에 적개감을 시전한 수꼴 매국 노론 잡동사니든가ㅋㅋㅋ


카페를 보니,
전방후원분을 바로 D1과 연결시키고 왜구와 연결시키고 자빠졌네.


내 기억으론 여태까지 D1이 가장 많이 나온 지역은 충청도 지역이다란 비교적 최신 결과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전혀 언급 없이 고창 지역 얘기만 하고 있는 것도 의도가 불순하고...


전방후원분이 열도에서 건너온 세력이고 그 열도세력에 의해 하플로 구성이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라면 왜 열도인의 또 다른 표지 유전자랄 수 있는 47z가 전라도에서 제일 적게 나오는지 설명이 되어야함. D1만큼의 빈도로 나와야 정상 아닌가?


아무튼, 전방후원분 문제는 전라도 지역 이외에도
엄연히 여러 곳에 이 장고형고분이 존재하고 있다는 팩트를 무시하는 한,
겉돌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선 알고 접근해야 종합적, 합리적 분석이 가능하다.




명백히 전방후원분은 북한 대동강변에 무수히 널려 있고, 한강변에 세계최대 규모의 분이 있으며 충청지역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부산에도 존재하는 전방후원분을 죽어라 전라도지역으로 한정하는 이유는, 고구려의 정통후계자란 식으로 이론을 구축해온 북한 입장에서도 까고보니 평양성이 백제의 한성이었고 주변에 널린 전방후원분이 그 백제의 황실분이더란 사실을 인정하기 불가능한 상태이고,  남쪽에서도 전방후원분의 전국 편재를 인정하게 되면 당연히 조악한 식민사학 자체가 파산나 주류사학자들 전체가 한꺼번에 실업자가 될 터라 불순한 정치적 의도와 결합하여 "여러모로 만만한 동네북인 전라도"만 "왜구들에게 내주자는 묵시적 합의"를 하고 있기 때문인거지.


비교적 "양심적" 학문활동을 하고 있는 경북대 박찬수교수도 최근 저서에서 충청도 지역의 전방후원분을 왜계 무덤이라고 대충 얼버무리고 말 정도인데 말 다했지.


일본에서는 3세기 중엽에 전방후원분이 나타나고 사서의 각종 기록을 보면 백제의 열도 진출 시작시기도 그 때 쯤이란 사실과,  발굴이 금지되어 있어 몇개 발굴되지 않은 무덤에서 백제계 위세품과 유물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다는 점등을 고려할 때 분명 백제계 무덤 양식임!! 어떤 사람은 그렇게 얘기하더군. 한반도에서는 지금도 일반인들도 전방후원분 양식으로 무덤을 쓴다고... 둥근 무덤에 네모 난 상석! 그 자체가 전방후원분의 개념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


오히려 전라도 지역은 백제에 밀린 한반도토착 마한 문명의 최후 보루로서 특유의 대형 옹관묘 세력이 늦은 시기까지도 강력히 자리 잡고 있었기때문에 백제의 전방후원분 침투가 가장 늦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 전라도지역의 전방후원분은 대체적으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엽까지 대략 60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에, 중심지역이 아닌 영산강의 변두리지역에 산발적으로 존재한 이유가 뭐겠나? 그 때서야 나주 중심의 마한 세력에 대한 백제의 의미있는 정치적 통제가 가능해져 열도에서 역수입한 백제계 왜인 용병을 동원 감시 견제한 짧은 역사의 결과가 남은 것이지. 그래서 수비에 따르면 형질인류학적으로 봤을 때 전라도 특히 전남이 국내의 여러 지역 중 일본이나 중국의 형질적 특질과 가장 먼, 가장 한국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겠고...


예언을 하자면, 한강변이나 대동강변의 전방후원분은 기원전후까지 그 조성시기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그리고 또 수비에 따르면, 황해도,경기북부,강원서부 지역의 형질인류학적 특징이 다른 지역과 좀 구분된다고 하는데 이는 말갈이나 왜의 영향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춘천의 우두산이란 왜인 전설이 있는 산의 존재도 그렇고, 삼국사기에 백제와 말갈의 전투 기록이 나오는 것도 그렇고.....어쩌면 말갈=왜였을 수도 있다. 그래서 고구려의 지배를 받던 말갈군사의 영향에 의해 왜어적 특징을 갖는 지명이 중부지방에 남아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는데 흠...




그러니까, 왜인의 본질적 실체는 양자강 하구에 집중거주하던 월인, 하플로로는 O1계통이 아주 유력해 보이고, 지나족의 원류는 O3가 아니라 O2a계통임이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근거는 몇가지가 있는데 주절주절 쓰기 귀찮다. 니들이 알아서 생각해보고...


한국말을 쓰는 원류족은 O3중 m117, N,Q,소수의 R,J의 융합족이었고, 되려 O2b계통은 지금의 태국이나 라오스같은 열라뽕따이어를 한국어족에 동화되기 전에 쓰고 있었다고 본다.


이상 아주 중대한 떡밥들을 공짜로 던져줬으니 대가리 터지도록 잘 궁구해보도록!
대가리 터지도록 나도 궁구하고 사색하고 공부한 결과 얻은 결론이니까!!
ㅋㅋㅋㅋ




근데, 이 역갤 존망했냐? 완전 개판이구먼..




ㅋㅋㅋㅋ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story_qna&no=14227&page=1

흑인여자들이 왤케 나를 좋아하냐?!?

흑인여자가 저번에 학교에서 나보고 갑자기 내옆에 앉더니 손나 적극적으로 들이댐....가까이붙어서 막 팔꿈치 만지고.....ㄷㄷㄷㄷ 손나 무서움......


저번에는 일하는데 어떤 흑인여자가 새차하러오는데 계산할때 이상하게 눈이 너무 잘맞아서 불꽃튀기는데 갑자기 그 흑인여자가 나 옆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데


담에 올때 아이스크림 가져올까 이래서 응 이랬음....


오늘은 흑인여자가 지나가는데 눈마주쳤는데 멕시코여잔줄알았는데 자세히보닌깐 흑인같음...너무 몸매가 좋아서 뒤돌아보는데 같이 두돌아봄....


난흑인 넘 못생겨서 안좋아하는데... 그때 일할때 손님으로 만난 흑인여자애는 만날때마다 눈이 그냥 뭐라그러지 저절로 자석처럼 딱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들면서 딱 마주쳐지면서 고정되고


안떨어짐...보고싶어서 계속 보고 또보게 되는 그런게 아니라 그냥 저절로 자석처럼 딱 눈에 고정되는 느낌....이상하게 난 베트남여자애들을 좋아하는데 암튼 베트남이나 한국이나 멕시코나 이런애들한테는 이런 자석같이 서로 눈이 딱 고정되고 고정되는 느낌의 경험이 한번도 없었는데....


그냥 내가 좋아해서 자꾸 보고싶다 이런 느낌만있지...흑인여자한테는 이런경험이 딱한번있었음.... 내가 좀 언어장애자같에서 설명을 잘못하겠다

germanic historical scholars have been fabricating greek and roman history as if germanic have something to do with greeks and romans

ah yes it drives me crazy....when germanic people say westerners as germanic or americans say westerners as americans....they think they are the representative of west....even they say we westerners as if west is only them germanic or americans....we westerners have this bad thing but that's only germanic people who have that bad thing not great hellas or latin europeans....I have even seen english girl said my culture to french foods and she equalizes her poor english foods to great french foods in summarizing as western food...what kind of complex these arrogant germanic people have in mind?!? germanic historical scholars even have been stealing and fabricating greek and roman history as to sound like as if it's there history in the name of vague 'western civillization' since miedival period. now I see germanic people think that music and food Greek and Middle Easterner have in common because middle easterner learned from greeks, come from middle east to greece because germanic don't have it common with greek people and they think they are the only one who is affected by greek civillization when germanic people infact learned greek cultures from arabs, and think ancient greeks have same root with germanic.....And they absurditly assume that ancient greeks were them who in reality greeks see as exotic looking northern barbarians and ancient greek culture must have been similar to germanic culture which greeks see as cultureless barbarians...and when greeks literally have nothing at all to do in history with germanic/slavic barbarians...

http://www.city-data.com/forum/asia/2428040-abe-japans-apologized-enough-15.html#post40895426

Wednesday, August 19, 2015

한씨에 아이누유전자가 가장 많다

jeksh 이응의 하플로가 D2일 가능성도 꽤 있다. 한(韓)씨(6.6% D2)에다가 전라북도 김제(고창 위)혈통이다. 이응의 유력한 하플로로 C3와 O2b1b도 있는듯. 121.128.*.* 2014.01.13 00:12:26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history_qna&no=5525

Arabs learned philosophy from Greeks

Greek philosophy: impact on Islamic philosophy

During the Hellenistic period (323-43 bc), classical Greek philosophy underwent a radical transformation. From being an essentially Greek product, it developed into a cosmopolitan and eclectic cultural movement in which Greek, Egyptian, Phoenician and other Near Eastern religious and ethical elements coalesced. This transformation is best symbolized by the role Alexandria played as the hub of diverse currents of thought making up the new philosophy.
When the Abbasid Caliphate was founded in Baghdad in 750 ad, the centre of learning gradually moved to the Abbasid capital, which became in due course the heir of Athens and Alexandria as the new cultural metropolis of the medieval world. About two centuries later Cordoba, capital of Muslim Spain, began to vie with Baghdad as the centre of 'ancient learning'. From Cordoba, Greek-Arabic philosophy and science were transmitted across the Pyrenees to Paris, Bologna and Oxford in the twelfth and the thirteenth centuries.
The initial reception of Greek-Hellenistic philosophy in the Islamic world was mixed. It was frowned upon at first as being suspiciously foreign or pagan, and was dismissed by conservative theologians, legal scholars and grammarians as pernicious or superfluous. By the middle of the eighth century ad the picture had changed somewhat, with the appearance of the rationalist theologians of Islam known as the Mu'tazilites, who were thoroughly influenced by the methods of discourse or dialectic favoured by the Muslim philosophers. Of those philosophers, the two outstanding figures of the ninth and tenth centuries were al-Kindi and al-Razi, who hailed Greek philosophy as a form of liberation from the shackles of dogma or blind imitation (taqlid). For al-Kindi, the goals of philosophy are perfectly compatible with those of religion, and, for al-Razi, philosophy was the highest expression of man's intellectual ambitions and the noblest achievement of that noble people, the Greeks, who were unsurpassed in their quest for wisdom (hikma).

  1. The rise of Neoplatonism
  2. Arabic translations of Greek philosophical texts
  3. Eclecticism and the systematization of philosophical ideas
  4. The legacy of Aristotle
  5. Presocratic and post-Aristotelian philosophers

1. The rise of Neoplatonism



Neoplatonism has been described as the final summation or synthesis of the major currents in Greek philosophy, Pythagoreanism, Stoicism, Platonism and Aristotelianism, into which an oriental religious and mystical spirit was infused (see Neoplatonism). Its founder, Plotinus, was born in Lycopolis in Egypt, studied at Alexandria and lectured in Rome. He studied with Ammonius Saccas and was a classmate of Origen, who became a Christian. Plotinus was so profoundly interested in oriental religions that he joined the abortive expedition of the Roman Emperor Gordian to Persia, as we are told by Porphyry, Plotinus' disciple and biographer, in search for 'the ways and beliefs of the Persians and Indians'. When the Emperor died on the way and the expedition came to grief, Plotinus sailed to Rome in ad 244, where he achieved great success as a teacher.
The other great representative of Neoplatonism was Diadochus Proclus, whose metaphysical outlook, like that of Plotinus, marks the final phase in the struggle of Greek paganism against Christianity at Athens, where he taught, and Alexandria, where he studied under Olympiodorus. It also marked that version of Greek philosophy which exerted a particular fascination upon Muslim minds. Other representatives of Neoplatonism during the Byzantine period include Syrianus, the teacher of Proclus, Damascius, Proclus' pupil, Simplicius and Philoponus. All those philosophers or commentators were known to the Arabs and some of their writings, sometimes lost in Greek, were translated into Arabic.
In ad 529 the Byzantine Emperor Justinian ordered the school of Athens, the last bastion of Greek paganism, to be closed. Seven of its teachers, including Syrianus and Damascius, emigrated to Persia and were well received by the Emperor Chosroes I, who was an admirer of Greek learning and the founder, in ad 555, of the School of Jundishapur which was destined to become a major centre of Greek medical and scientific studies (see Neoplatonism in Islamic philosophy �1). Subsequently, due to its proximity to Baghdad and the close political links between the Abbasids and the Persians, Jundishapur served as a staging station in the process of transmitting Greek medical and scientific learning into the Islamic world.
However, the first phase in the process of transmitting Greek learning into the Near East was the translation of theological treatises, such as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and Clement's Recognitiones, into Syriac. As a prelude, a series of logical texts were also translated into Syriac, including the Isagog of Porphyry, Aristotle's Categories, De interpretatione and Prior Analytics. Beyond these, for theological reasons, the Syriac translators were not allowed to proceed.

2. Arabic translations of Greek philosophical texts



The Arab conquest of Syria and Iraq in the seventh century did not, on the whole, interfere with the academic pursuits of Syriac scholars at Edessa, Nisibis, Qinnesrin and other centres of Syriac-Greek learning. To these Christian centres should also be added Harran in Northern Syria, home of a sect of star-worshippers known in the Arabic sources as the Sabaeans and alleged to have been founded by Alexander the Great. Throughout the eighth and ninth centuries (second and third centuries ah), a new impetus was given to the translation movement thanks to the enlightened patronage of three of the early Abbasid caliphs at Baghdad, al-Mansur, Harun and his son al-Ma'mun, who founded the House of Wisdom in Baghdad to serve as a library and institute of translation. It was during the reign of al-Ma'mun that the translation of medical, scientific and philosophical texts, chiefly from Greek or Syriac, was placed on an official footing. The major translators who flourished during al-Ma'mun's reign include Yahya ibn al-Bitriq, credited with translating into Arabic Plato's Timaeus, Aristotle's On the Soul, On the Heavens and Prior Analytics as well as the Secret of Secrets, an apocryphal political treatise of unknown authorship attributed to Aristotle.
However, the shining star of al-Ma'mun's reign was the Nestorian Hunayn ibn Ishaq (d. ah 264/ad 873), who hailed from al-Hirah in Iraq and, jointly with his son Ishaq (d. ah 299/ad 911), his nephew Hubaysh and other associates, placed the translation of Greek medieval and philosophical texts on a sound scientific footing. The chief interests of Hunayn himself were medical, and we owe to him the translation of the complete medical corpus of Hippocrates and Galen, but Hunayn and his associates were also responsible for translating Galen's treatises on logic, his Ethics (the Greek original of which is lost) and his epitomes of Plato's Sophist, Parmenides, Cratylus, Euthydemus, Timaeus, Statesman, Republic and Laws. (Only the epitomes of the Timaeus and the Laws have survived in Arabic.)
The interest of Hunayn and his school in Galen, the outstanding Alexandrian physician and Platonist, is noteworthy and this philosopher-physician is a major figure in the history of the transmission of Greek learning into Arabic. Not only his sixteen books on medicine but a series of his logical and ethical writings were translated and played an important role in the development of Arabic thought. Apart from the epitomes of Plato's Dialogues already mentioned, his Pinax (list of his own writings), That the Virtuous can Profit from Knowing Their Enemies, That One Should Know His Own Faults and especially his Ethics have influenced moral philosophers from Abu Bakr al-Razi to Ibn Miskawayh and beyond.
Of the works of Aristotle, Hunayn's son Ishaq is responsible for translating the Categories, De interpretatione, On Generation and Corruption, the Physics, On the Soul, the Nicomachean Ethics and the spurious De Plantis, written by the Peripatetic philosopher Nicolaus of Damascus (first century bc). By far the most important Aristotelian treatise to be translated into Arabic during this period is the Metaphysics, known in the Arabic sources as the Book of Letters or the Theologica (al-Ilahiyat). According to reliable authorities, a little-known translator named Astat (Eustathius) translated the twelve books (excluding M and N) for al-Kindi, as did Yahya ibn 'Adi a century later. However, Ishaq, Abu Bishr Matta and others are also credited with translating some parts of the Metaphysics.
Equally important is the translation by Ibn Na'imah al-Himsi (d. ah 220/ad 835) of a treatise allegedly written by Aristotle and referred to in the Arabic sources at Uthulugia or Theologia Aristotelis. This treatise, which consists of a paraphrase of Plotinus' Enneads IV-VI, made by an anonymous Greek author (who could very well be Porphyry of Tyre), together with Proclus' Elements of Theology (known as the Pure Good or Liber de causis), thoroughly conditioned the whole development of Arab-Islamic Neoplatonism (see Neoplatonism in Islamic philosophy). Al-Kindi is said to have commented on the Theologia Aristotelis as did Ibn Sina and others, and al-Farabi refers to it as an undoubted work of Aristotle. A series of other pseudo-Aristotelian works also found their way into Arabic, including the already mentioned Secret of Secrets, De Plantis, Economica and the Book of Minerals.
Among other translators of Greek philosophical texts, we should mention Qusta ibn Luqa (d. ah 300/ad 912), Abu 'Uthman al-Dimashqi (d. ah 298/ad 910), Ibn Zur'ah (d. ah 398/ad 1008) and Ibn al-Khammar (d. ah 408/ad 1017), as well as the already-mentioned Abu Bishr Matta (d. ah 328/ad 940) and his disciple Yahya Ibn 'Adi. None of those translators made any significant or original contribution to Arabic philosophical literature, although they laid the groundwork for subsequent developments and served as the chief purveyors of Greek philosophy and science into the Islamic world. However, there were noteworthy exceptions: Abu Bishr Matta was a skilled logician, and the Jacobite Yahya ibn 'Adi stands out as the best-known writer on Christian theological questions and on ethics in Arabic. The Harranean Thabit ibn Qurra (d. ah 289/ad 901) was an outstanding mathematician and astronomer as well as a translator.

3. Eclecticism and the systematization of philosophical ideas



Al-Kindi, already mentioned in connection with the translation of Aristotle's Metaphysics and the apocryphal Theologia Aristotalis, should be regarded as the first genuine writer on philosophical subjects in Islam. He appears from bibliographical sources to have been a truly encyclopedic writer on every philosophical or scientific subject; his works total around three hundred, of which only a small number have survived in Arabic or Latin. He was profoundly interested in Greek thought as well as Indian religious ideas, and was a professional astrologer. His extant works, however, give the impression of eclectic and hasty composition, reflecting the influence of Socrates, Plato and Aristotle in an undefined manner. We owe to him however the first treatise on philosophical terms and definitions, modelled on Aristotle's Book Delta of the Metaphysics, which became in due course the model of almost all subsequent parallel treatises (see Aristotelianism in Islamic philosophy).
The first genuine system-builder in Islam, however, was al-Farabi. He was the first outstanding logician of Islam, who commented on or paraphrased the six books of Aristotle's Organon, together with the Rhetoric and the Poetics, which formed part of the Organon in the Syriac-Arabic tradition and to which the Isagog of Porphyry, also paraphrased by al-Farabi, was added. He also wrote several original treatises on the analysis of logical terms, which had no parallels until modern times. He defended Aristotelian logic against the Arabic grammarians who regarded logic as a foreign importation, doubly superfluous and pernicious (see Logic in Islamic philosophy). He also laid down the foundations of Arab-Islamic Neoplatonism in a series of writings, the best-known of which is al-Madina al-fadila (Opinions of the Inhabitants of the Virtuous City). This treatise is inspired by the same utopian ideal as Plato's Republic (see Plato �14), but is essentially an exposition of the emanationist world-view of Plotinus to which a political dimension has been added. In that latter respect, it had hardly any impact on political developments in Islam, but it did inspire subsequent writers on political philosophy such as Ibn Bajja. Another great champion of the emanationist world-view was Abu 'Ali al-Husayn Ibn Sina (Avicenna), who was a confessed spiritual disciple of al-Farabi.
The only great Platonist of Islam was Abu Bakr al-Razi, the greatest medical author and practitioner of the third and fourth centuries ah (ninth and tenth centuries ad). Both in ethics and in metaphysics, al-Razi exhibits a profound veneration for Plato, 'the master of the philosophers and their leader', as well as to the great Alexandrian doctor and philosopher Galen, whose epitomes of Plato's Dialogues, as we have mentioned, formed the basis of the Arabic translations of Plato's works in the third century ah (ninth century ad). Although a Manichean or Harranean influence is discernible in his thought, the 'five eternal principles' which form the substance of al-Razi's metaphysics and cosmology, namely the Creator (al-Bari'), the soul, prime matter (al-hayula, hyle) space and time, can be shown to derive from Plato's Timaeus and his other dialogues. The other noteworthy Platonist, especially in the realms of ethics and psychology, was a fellow Persian philosopher, Ibn Miskawayh, the best known ethical philosopher of Islam (see Ethics in Islamic philosophy �4; Platonism in Islamic philosophy).

4. The legacy of Aristotle



As already mentioned, all the works of Aristotle were translated into Arabic with the exception of the Politics, which for some obscure reason remained unknown to the Arabs. In addition a large number of apocryphal writings, including the Secret of Secrets, the Economica, De plantis, De mundo, the Theologia and the Liber de causis were also attributed to Aristotle. Of these works, the Organon, On the Soul, the Nicomachean Ethics, the Physics, the Metaphysics, On Generation and Corruption and On the Heavens played a decisive role in the development of logical and metaphysical ideas in Islam. However, chiefly due to the influence of the apocryphal Theologia Aristotalis, the tendency of early Muslim philosophers was to interpret Aristotle in Neoplatonic terms; a basic premise of this interpretation was the total agreement of Plato and Aristotle on all major issues alleged to separate them. (A famous treatise of al-Farabi entitled al-Jam' bayn ra'yay al-hakimayn (The Reconciliation of Plato and Aristotle), probably modelled on Porphyry's lost work of the same title, illustrates this point.)
The picture radically changed with the appearance on the philosophical scene of the greatest Arab Aristotelian, Ibn Rushd of Cordoba, known in Latin as Averroes. Ibn Rushd continued the tradition of commenting on Aristotle's works initiated in Arab Spain by Ibn Bajja (Avempace) and in the East by al-Farabi. Ibn Rushd, however, produced the most extensive commentaries on all the works of Aristotle with the exception of the Politics, for which he substituted the Republic of Plato. These commentaries, which have survived in Arabic, Hebrew or Latin, earned him in the Middle Ages the title of the Commentator, or as Dante put it in Inferno V. 144, 'che'l gran commento feo' (he who wrote the grand commentary). Ibn Rushd actually wrote three types of commentaries, known as the large, middle and short commentaries, on the major Aristotelian treatises, notably the Physics, the Metaphysics, the Posterior Analytics, On the Soul and On the Heavens. In addition, he defended Aristotle against the onslaughts of al-Ghazali, the famous Ash'arite theologian, in a great work of philosophical debate entitled the Tahafut al-tahafut (Incoherence of the Incoherence), a rebuttal of al-Ghazali's Tahafut al-falasifa (Incoherence of the Philosophers).

5. Presocratic and post-Aristotelian philosophers



The records of the early Greek philosophers in Arabic, such as al-Sijistani's Siwan al-hikma (Vessel of Wisdom) and al-Shahrastani's al-Milal wa'l nihal, usually begin with the Seven Sages, followed by a list of the Presocratics, including Thales, Anaxamines, Anaximander, Democritus, Pythagoras and Heraclitus, with very brief accounts of their views, which are invariably given a religious and mystical twist. This is particularly true of Empedocles and Pythagoras, who are said to have received 'wisdom' (hikma) from Semitic sources, notably Luqman and Solomon, and to have asserted as genuine Muslims avant la lettre the unity of God, the creation of the world and the resurrection.
Of the post-Aristotelian philosophers, Chrysippus is almost the only Stoic philosopher mentioned; Zeno of Citium is almost unknown, despite the significant influence of Stoicism both in logic and in ethics on the early philosophers and theologians. Diogenes the Cynic (see Diogenes of Sinope), often confused with Socrates, is represented as a key moral and ascetic figure, but of the latter Stoic philosophers such as Cicero, Epictetus and Marcus Aurelius, no mention is made in the classical Arabic sources. Of the materialists, only the names of Democritus and Epicurus are mentioned. The impression one gains from reading these sources is that Greek philosophy had, according to the authors, reached its zenith with Aristotle, who superseded his predecessors in such a way as to render them superfluous. Ibn Bajja, for instance, in his paraphrase of the Physics of Aristotle, justifies his total omission of the views of the Presocratics on the grounds that Aristotle had refuted their 'dialectical' views and therefore it was unnecessary to dwell on them, a position which al-Ghazali had also adopted in his Tahafut al-falasifa. As his target, al-Ghazali chose Aristotle to the exclusion of all others, on the ground that 'he (Aristotle) had refuted all his predecessors, including his teacher, whom they nickname Plato the Divine. Then he excused himself for disagreeing with his teacher, saying: "Plato is a friend and the truth is a friend, but truth is a greater friend than Plato"' (an obvious paraphrase of Nicomachean Ethics I). Of Aristotle's Greek commentators, the Arab historians of ideas and philosophers refer frequently to, or quote from, the writings of Alexander of Aphrodisias, Themistius, Olympiodorus, Simplicius, Philoponus and Nicolaus of Damascus (first century bc). The earliest commentators, such as Theophrastus (d. 288 bc) and Strato (d. c.269 bc), were virtually unknown to the Arabs.
The chief historical significance of the Muslim-Spanish phase in the rise and development of Muslim philosophy is that it served as a major link in the transmission of Greek philosophy to Western Europe. The Muslims had been the custodians of that philosophy, which had been almost completely forgotten in Western Europe since the time of Boethius, who was responsible chiefly for translating the Aristotelian logic into Latin. By the end of the twelfth century, the translation of Arabic philosophical, scientific and medical works into Hebrew or Latin by such eminent scholars as Gerard of Cremona, Michael Scot and Herman the German (see Translators) had wrought a genuine intellectual revolution in learned circles. The most influential Muslim philosopher to leave a lasting impression on Western thought was Ibn Rushd (Averroes). During the thirteenth century, philosophers and theologians split into two rival groups, the Latin Averroists with Siger of Brabant and Boethius of Dacia at their head, and the anti-Averroist group led by Albert the Great and Thomas Aquinas (see Averroism). The confrontation between these two groups became so violent that in the second half of the thirteenth century the Bishop of Paris, �tienne Tempier, had to intervene and in 1270 and 1277 issued ecclesiastical condemnations of a total of 219 propositions which were of Aristotelian or Averroist inspiration (see Aristotelianism, medieval). It should be noted, however, that it was thanks to the Latin translations of Ibn Rushd's commentaries that the rediscovery of Aristotle in Western Europe and the concurrent emergence of Latin Scholasticism, one of the glories of late medieval thought, were made possible.
See also: Aristotelianism in Islamic philosophy; Hellenistic philosophy; Islam, concept of philosophy in; Islamic philosophy: transmission into Western Europe; Neoplatonism in Islamic philosophy; Platonism in Islamic philosophy
MAJID FAKHRY
Copyright � 1998, Routledge.

References and further reading

Badawi, A.-R. (1987) La transmission de la philosophie grecque au monde arabe (The Transmission of Greek Philosophy into the Arab World), Paris: Vrin. (Contains useful information on manuscripts and Greek-Arabic texts or translations.)

Duval, R. (1970) La litt�rature Syriaque (Syriac Literature), Amsterdam: Philo Press. (First published in 1899, this is a detailed account of the Syriac translations of philosophical texts.)

Madkour, I. (1969) L'Organon d'Aristote au monde arabe (The Organon of Aristotle in the Arab World), Paris: Vrin. (First published in 1934, an important review of the stages through which Aristotelian logic passed in the Arab world.)

Peters, F. (1996) 'The Greek and Syriac Background', in S.H. Nasr and O. Leaman (eds) History of Islamic Philosophy, London: Routledge, ch. 3, 40-51. (Discussion of some of the important features of Greek and Syriac culture as sources of Islamic philosophy.)

Pines, S. (1986) Studies in Arabic Versions of Greek Texts, Jerusalem: Hebrew University and Brill. (The first part consists of a series of important Greek texts in Arabic translation, with valuable comments and information.)

Shayegan, Y. (1996) 'The Transmission of Greek Philosophy into the Islamic World', in S.H. Nasr and O. Leaman (eds) History of Islamic Philosophy, London: Routledge, ch. 6, 98-104. (Detailed account of how the transmission took place, paying particular attention to the Persian background.)

Steinschneider, M. (1960) Die Arabischen �bersetzungen aus dem Griechischen (The Arabic Translations of Greek Writings), Graz: Akademische Druck U. Verlagsanstalt. (First published 1889, this is the earliest authoritative review in a European language of the Arabic translation of Greek texts.)

Vacherot, E. (1846-51) Histoire critique de l'�cole d'Alexandrie (Critical History of the Alexandrian School), Paris. (The most comprehensive history of philosophical developments during the Alexandrian period.)

Walzer, R. (1962) Greek into Arabic,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A collection of studies dealing with the transmission of Greek philosophy to the Arabs, by an eminent classical scholar and Arabist.)
http://www.muslimphilosophy.com/ip/rep/H011

Arabs learn everything from Greeks comment

lol you learn in middle school history class muslim stole from greek art, drawing, sculpture, architecture, music, math, science, philosophy, food, medical, medicine, literature, law, astronomy, etc etc....


how do you think germanic europeans know Eucleides, Socrates, Hypocrates, Platos, Herophilos and Polykleitos?!? yes Muslims learn Greek figure and Greek culture and taught Greek figure and Greek culture to Germanic Europeans....

watch the greek music arabs stole...

https://www.youtube.com/watch?v=hKABwoWrMAA

https://www.youtube.com/watch?v=oMoYxUMJG4c

Arabs learned medical medicine from Greeks

Islamic Culture and the Medical Arts


Greek Influences

The medical theories inherited particularly from the Greek world supplied a thread of continuity to professional learned medical practice throughout the medieval Islamic lands. The caliphs al-Mansur, Harun al-Rashid (of the Thousand and One Nights fame), and al-Ma'mun are noted for their patronage of learning and medicine. When suffering from a stomach complaint, al-Mansur, who ruled from 734 to 775 (158-169 H), called a Christian Syriac-speaking physician Jurjis ibn Jibra'il ibn Bakhtishu`to Baghdad from Gondeshapur in southwest Iran. His son was also called to Baghdad in 787 (171 H), where he remained until his death in 801, serving as physician to the caliph Harun al-Rashid. The third generation of this family, Jibra'il ibn Bakhtishu`, was physician to Harun al-Rashid and to the two succeeding caliphs in Baghdad. For eight generations, well into the second half of the 11th century, twelve members of the Bakhtishu` family were to serve the caliphs as physicians and advisors, to sponsor the translation of texts, and to compose their own original treatises. A remarkable, if not unique, record in the history of medicine.
Early in the 9th century, there was established in Baghdad a foundation called the House of Wisdom (Bayt al-Hikmah), which had its own library. Its purpose was to promote the translation of scientific texts. The most famous of the translators was Hunayn ibn Ishaq al-`Ibadi, a Syriac-speaking Christian originally from southern Iraq who also knew Greek and Arabic. He was the author of many medical tracts and a physician to the caliph al-Mutawakkil (ruled 847-861/232-247 H), but he is most often remembered as a translator, an activity he began at the age of seventeen. He produced a truly prodigious amount of work before his death in about 873 (260 H), for he translated nearly all the Greek medical books known at that time, half of the Aristotelian writings as well as commentaries, various mathematical treatises, and even the Septuagint. Ten years before his death he stated that of Galen's works alone, he had made 95 Syriac and 34 Arabic versions. Accuracy and sensitivity were hallmarks of his translating style, and he was no doubt responsible, more than any other person, for the establishment of the classical Arabic scientific and medical vocabulary. Through these translations a continuity of ideas was maintained between Roman and Byzantine practices and Islamic medicine.
Folios 62b and 63a of Hunayn ibn Ishaq's Arabic translation of Galen's introductory treatise on the skeletal system. The pages are handwritten in black ink with headings in black and in red.



A very rare copy of Hunayn ibn Ishaq's Arabic translation of Galen's introductory treatise on the skeletal system,
On Bones for Beginners, known in Latin as De ossibus ad tirones.
NLM MS P26,
opening at fols. 62b-63a, the beginning of the treatise


A number of Hippocratic treatises circulated in Arabic translations made at this time, as well as the writings of more than a dozen other Greek physicians and some Syriac, Persian, and Indian medical writers. Knowledge of medicinal substances was based initially upon the illustrated treatise on materia medica written in Greek by Dioscorides in the 1st century. Several Arabic translations and revisions of his treatise were undertaken in 9th-century Baghdad and in 10th-century Spain and later.
Folios 47b and 48a of a commentary on the Hippocratic treatise On the Nature of Man by Ibn al-Nafis (d. 1288/687 H). The pages are handwritten in black ink with headings in red.



A commentary on the Hippocratic treatise On the Nature of Man by Ibn al-Nafis (d. 1288/687 H). The copy was completed on 1 November 1269 (4 Rabi` I 668 H) by his pupil who worked from Ibn al-Nafis's autograph copy.
NLM MS A69, fols. 47b-48a.
No other copy recorded.


No single figure was of greater influence upon medieval Islamic medicine than Galen. In his writings Galen displayed a firm belief in a spiritual Providence and in the foresight and design of the Creator as exemplified in the human form -- ideas acceptable to Muslim physicians. The combination of philosophy and medicine, which is so evident in the writings of Galen, continued to be a part of medieval Islamic medical literature.

http://www.nlm.nih.gov/exhibition/islamic_medical/islamic_03.html

Saturday, August 15, 2015

cambodians are darker and less mongoloid look than filipinos

Old 07-06-2011, 01: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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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ly Posted by foadi View Post
i am currently in manila, just arrived yesterday, and as i said before, i am surprised so many ppl voted the philippines on this one. it's easily near the bottom of the pack in southeast asia. you can find good lookers, sure, but on average the philippines is awful. i suspect a lot of filipinos voted in this poll or something. or it could be similar to the japanese effect, where people are voting purely on media exposure (the philippines gets more exposure in the west because there are more filipinos living in the west).

but ya, not impressed w filipino beauty at all.
maybe because a lot of Westerners like dark & exotic looking (which includes a lot of Filipinos) but many Asians think that look is ugly, they prefer light skin and East Asian-looking. I think if people knew more about Cambodians then it would be higher in the poll. They're more dark & exotic looking than Filipinos.


http://www.city-data.com/forum/asia/1294232-average-southeast-asian-country-do-you-10.html

arrogant nadal cry like a little girl for 25 minutes for losing to federer in wimbledon 2007

The day Roger Federer made Rafael Nadal cry


Rafael Nadal and Roger Federer have returned civility to the top echelons of men's tennis. Picture: AFP Source: Herald Sun
PAT Cash describes life on the tennis circuit in the 1980s as a throwback to the wild west.

Rampant egomaniacs, would-be rock and rollers and tough, outstanding athletes mingled explosively as the sport threw off its conservative shackles to become a battleground for a rebellious new breed.
The ATP Tour was packed with swaggering gunslingers - Jimmy Connors, John McEnroe and Vitas Gerulaitis - and menacing assassins - Bjorn Borg, Boris Becker, Mats Wilander, Guillermo Vilas and Ivan Lendl.
It was no place for the meek.
Rivalries were shaped by endless confrontations, on and off court, as the faint-hearted were ruthlessly crushed.
Cash learnt the hard way. Friendship was an extravagance few could afford. And it was rarely indulged.
Most of those long-retired, middle-aged gladiators are now on better terms.
But a quarter of a century ago, the very notion of civility was unheard of.
Fast forward to the semi-finals of the Tennis Masters Cup in Shanghai in November.
Roger Federer and Rafael Nadal have barely walked off centre court and the pair cross paths in a corridor.
Federer has hardly broken a sweat destroying Nadal 6-4 6-1.

In another world, Nadal would have shunned contact with Federer at all costs.
Eye contact would have been avoided. Token conversation likewise.
But here is Nadal, effortlessly juggling a soccer ball off his arms, shoulders and feet as part of his warm down in front of an entranced Federer.
Instinctively, Federer joins in as the two best tennis players in the world chat while keeping the ball in the air.
After a few minutes marvelling at Nadal's deft footwork, Federer generously declares the Spaniard has superior skills to Diego Maradona.
The men exchange smiles and Nadal happily takes his leave.
It is a new world. Fraternity has returned at the top and Nadal, at 21, is content to lead the way with Federer.
There is no doubt the muscular Spaniard would have handled himself in Cash's era. Equally, there is no question over Nadal's mental toughness.
Amazingly, he has been unable to use running as a training tool since 2005 because of stress fractures in his feet.
But he has remained world No. 2, behind Federer, while winning three successive French Open crowns and forging a rare winning head-to-head record (8-6) against the Swiss master.
Nadal's affection for Federer has not blunted his desire to topple him, but his most savage setback in 2007 came at Federer's hands in a stupendous Wimbledon final.
The Spaniard's low point came about 7.30pm on July 8 in the wood-panelled All England Club locker room.
It was the moment Nadal was driven to tears amid the realisation the Wimbledon title and the season-ending No. 1 ranking had slipped through his hands.
As usual, there was no public sign of Nadal's angst.
"When I arrived to the locker room, I sat down and, as it's normal after losing the final of the tournament that you dream of winning, against the (world) No. 1 and with lots of chances, I started to cry of anger, of sadness," Nadal said.
"It's been the only match of the year that I've cried and one of the few in my career.
"It was a really close match. I was 20 or 25 minutes there (crying). When people started arriving, I sat down inside the tub. They were cheering me up.

"I thanked them and I asked for being alone. I don't like people witnessing me crying."
It was the match that could have changed history.
Nadal made the early running in the fifth set of a classic Wimbledon final, only to be shoved aside as nerves and a rampant Federer took control.
Federer's victory allowed him to maintain his rankings buffer over Nadal and move him closer to overtaking Pete Sampras's overall grand slam singles record of 14 titles.
Nadal has not surrendered his dream of usurping Federer but, for the moment, he is concerned at the charging pack behind him led by Serb Novak Djokovic.
At any other time, Nadal's rankings points tally of 5735 (Federer has 7180) would be sufficient to hold the No. 1 ranking.
"I've always been more preoccupied with the ones behind me than in front of me," Nadal said.
"Federer has always been far away. At certain point of the season, the press started printing that I could be the No. 1 at the end of the year.
"In the year classification (ATP race) I was ahead of him and he had to defend lots of things.
"The key match was Wimbledon's final."
Nadal has been stranded at No. 2 since July, 2005.
Another man might consider himself unlucky. Not Nadal.
He has never lost a singles match at the French Open, holds the world record for the most consecutive wins on any surface - 81 on clay - and has made two Wimbledon finals, but still cannot lay his hands on the No. 1 mantle.
There are compensations.
For starters, the left-hander is ridiculously wealthy, adding a further $6 million prizemoney to his fortune in 2007 with six titles from 70 wins in 85 matches.
The son of a Mallorcan restaurateur and glass-maker, Nadal hails from a close-knit clan of tough athletes.
He is coached by his uncle Toni, an imposing figure, who offered to quit at the start of this year.
"When things were going bad at the beginning of the season, he suggested it (resigning)," Nadal said.
"I said 'no'. He was not the problem. I had enough courage to change the situation without needing another coach. Toni is and will be my coach."
Concerns had been raised over Nadal's future in 2006 when defeat in his first Wimbledon final - to Federer - gave way to the most barren period of his career.
"When things go wrong, I get nervous," Nadal said.
"But I know that the normal is that I have to end up playing well again.
"If it is not tomorrow, it will be in two weeks, a month, or three or five.
"I was eight months title-less and I was anxious.
"When I won in Indian Wells, I began playing at a high level. Lots of times what you need is a click."
Nadal might rule the sport on clay, but he admits the pressure of performing on his favourite surface is suffocating and one of the reasons Federer has a better, more productive schedule.
"I spend two months playing thousands of matches (on clay) with the pressure of winning," Nadal said.
"Federer is different. He has a lots of weeks with nothing.
"I, without clay points, wouldn't be in Shanghai (at the Tennis Masters Cup).
"I've done a very good season outside clay, but if something happens during it, I'll be bad all the year.
"I arrived too exhausted to Hamburg (two weeks before the French Open). There was a moment when my head exploded, even more against Federer.
"I was playing a final every week for 4 or 5 weeks, with very hard matches and pressure.
"All the day I was thinking about the same. There's a moment that you are tired."
Nadal's relief at a third triumph in Paris, weathering a Federer storm for the second time in as many years, was as much because of stress as elation.
"I played all Roland Garros with a numbing foot, infiltrated with anaesthesia," Nadal said.
"I didn't want to go to the hospital to not have a small doubt in my head.
"I knew it was nothing serious. It was painful. I went to the hospital after the final and I had a small contusion."
Nadal is yet to excel in Australia, a curious blimp on an otherwise excellent career.
It is a situation he is eager to address at the Open from January 14-27.
And no one, not even Federer, would begrudge Nadal a victory at Melbourne Park.


http://www.heraldsun.com.au/sport/tennis/the-day-federer-made-nadal-cry/story-e6frfgao-1111115194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