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1, 2016

전라도에 마한 백제에 속하지 않은 무덤 발견

[고흥]5세기초 대형고분에서 유물 다량 출토
Date : 2006-03-27
Name : 장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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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두면 길두리고분에서 金銅冠 등 5세기초 유물 다량출토

- 전남대 발굴조사단, 발굴 1개월여 만에 금동관.구리거울 등 다량 출토 -
- 최고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 백제지역 무령왕릉 이후 최고 유물 -
- 고흥군, 문화재 지정.복원.전시관 건립추진, 분청사기 운대도요지와 연계 -


- 최고 정치세력을 암시하는 금동관, 금동신발 -

전남 고흥군 포두면 길두리 고분에서 금동관(金銅冠), 금동신발, 연호문경(連弧紋境=구리거울), 환두도(環頭刀), 철제갑옷 등 5세기초 최고 지배자를 상징하는 위세품(威勢品)이 다량 출토돼 학계를 깜짝 놀라게 하고 있다.

고흥군은 25일, “전남대박물관(관장 임영진) 발굴조사단이 길두리 고분에서 발굴 착수 1개월여 만에, 5세기 초반 고흥반도 일대에 대규모 세력이 존재하였음을 암시하는 금동관, 금동신발, 연호문경, 환두도, 철제갑옷, 금귀고리 등 최고의 위세품이 셋트를 이뤄 다량 발굴 됐으며, 1971년 백제의 단일 고분인 무령왕릉 발굴이후 최고급 유물”이라고 밝혔다.

금동관(金銅冠)은 뒤쪽에 반구형 장식이 달린 것으로써 전체적인 형태는 전북 익산 입점리 출토품과 상통하지만 문양이 투조문이어서 입점리 타출문과 다르고 충남 서산 부장리 출토품과 상통하다.

금동신발은 바닥의 T자형 투조문이 원주 법천리 1, 4호분 출토품과 상통하며 잔존상태가 좋지 않아 현장에서의 전모확인은 보류해 둔 상태다.



- 구리거울, 환두도, 유리소옥, 쇠화살촉 등 -

연호문경(連弧紋境)은 직경 10.5cm 크기로써 중앙의 원형 뉴(鈕=꼭지)를 4개의 박쥐형 뉴좌(鈕侳)가 감싸고 있고 그 사이에 4자의 명문이 있는데 자손들이 길이 번창하라는 뜻의 ‘장의자손’(長宜子孫)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뉴좌 외곽으로는 안쪽을 향하는 8개의 작은 연호문(連弧紋)이 있다. 고흥 길두리고분 연호문경은 중국 후한 熹平三年(서기 174년) 연호문경보다 문양이 약간 앞서는 기원 2세기 중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세품이다.

이밖에도 환두도 3점, 철모 2점, 금귀고리 1쌍, 갑옷, 투구, 철부, 방추자, 유리소옥, 다량의 쇠 화살촉 등이 출토됐다.

발굴조사단의 조사결과 길두리 고분은 직경 약 34m, 높이 약 6m 규모의 원형 고분으로써 전남 남해안지역에서는 최대급이며, 구릉 정상부에 성토하여 조성하였고 주변은 편평하게 땅을 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분 안에 있는 석실(石室)은 동서 방향으로 놓여져 있는데 길이 320cm, 너비 150cm(동)-130cm(서), 깊이 130cm 규모의 사다리꼴 석곽이다. 먼저 서벽과 북벽을 함께 축조하고 나중에 동벽과 남벽을 함께 축조했으며 벽은 가공한 판석을 벽돌 쌓듯이 축조하고 천정은 3개의 판석을 이용하였다. 또 석곽 주변에는 여러 겹의 깬 돌을 놓아 보강하였으나 벽면이 휘었다.

발굴조사단장인 임영진 전남대박물관장은 “무덤 양식은 백제나 마한(馬韓)식 돌방 무덤과는 차이가 있으며, 출토된 유물로 보아 고분의 연대는 5세기 초반대로 보아지고 당시 고흥반도 일대에 대규모 세력이 존재하였음을 암시하고 있다” 며 “고흥반도 일대에 존재하였던 역사적 실체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시작”이라고 조사의의를 밝혔다.

한편 고흥군과 전남대박물관은 3월 25일 오후 4시, 길두리고분 발굴현장에서 진종근 고흥군수, 유홍준 문화재청장, 이건무 중앙국립박물관장, 최병현 한국고고학회회장, 강정채 전남대 총장, 임영진 전남대박물관장을 비롯한 관계전문가, 교수 및 지역주민 등 3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고흥 길두리고분 공개행사」를 가졌다.



- 진종근 군수, 유홍준 문화재청장, 고고학계 전문가, 주민 등 -

이 자리에서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이토록 엄청난 유물이 고흥반도에서 발굴된 것은 국가적인 행운이며, 앞으로 어떤 식으로든 발굴에 차질 없도록 적극 지원해 나가겠다”고 밝혔고,

진종근 고흥군수는 “길두리 고분에서의 최고 국보급 유물발굴을 통해 우리 고흥의 유구한 역사와 우수한 문화를 입증 받게 됐다” 며 “앞으로 출토된 유물의 문화재 지정 및 복원사업과 함께 유물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겠으며, 운대도요지 분청사기 가마터와 연계한 역사교육장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백제시대의 금동관이 출토된 곳은 충남 2곳, 전북 1곳, 전남 1곳 등 4곳이나 되지만 이번 길두리 고분처럼 단일 고분에서 최고의 위세품이 다량으로 고스란히 발견되기는 처음이다.

학계는 한강유역에 도읍했던 한성백제(B.C 18~A.D 475년)가 남쪽의 지방세력을 간접 지배하면서 위세품을 전해 주었을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길두리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이 지역 지배세력이 중국계 유민 등 선진세력으로부터 얻은 것이거나, 아니면 백제의 중앙세력으로부터 ‘조문용’으로 받았을 가능성 등이 제기될 수 있다고 보고 있지만, 발굴조사단은 독자적인 대규모 정치세력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고 있어 앞으로 발굴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관련부서 : 문화관광과(문화예술)
= 자료게재 : 문화관광과(군정홍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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