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ne 9, 2016

충청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은 다르게 생겼다.

충청도사람과 경상도 사람의 기질 처음 듣는 얘기 | 2006/04/04 18:38 상생의 헤윰|ilggoon7

충청도 사람의 기질 (강의 요약)  
내 조금 딴 얘기를 하겠는데, 내가 여기 서산 3백 년 토백이다. 3백 년을 여기 살았다. 그런데 충청도 사람하고는 매가 눅어서 급한 일은 못한다. 내가 잘 아는 건축하는 사람이 있어서 물어봤다. “당신은 전국적으로 다 돌아다니는데 어디 사람이 그 중 좋더냐?” 하고, 내가 알면서도 묻는 것이다. 그 사람 말 좀 듣느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좋기야 충청도 사람이 그중 좋지요.” 한다. “어째서 그러냐?” 했더니 “아, 가서 얘기하면 아주 싹싹하고 금세 될 것처럼 그럽니다.” 한다. “그런데 두 번째 가면 타협이 돼서 계약을 할 게다 하고서 갔더니 처음 만났을 때와 비슷하고, 세 번 만나도 그렇습니다.




경상도 사람들은 ‘와 이카노’ 해도 두 번 세 번만 만나면 금세 되는데, 충청도 사람들 하고는 얘기를 못합니다, 잡아 늘여서.” 한다. 잡아 늘이면 늘여지는, 고무줄 사람이 충청도 사람이다. 내 고향 사람들이니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잖은가. 고무줄, 용수철처럼 잡아당기면 늘어나고 놓으면 도로 오그라진다. 그래서 내가 경상도 사람들하고 처음 상제님 사업을 시작했다. 그 사람들은 크게만 맞으면 일이 된다. 경상도 사람들하고 충청도 사람들하고는 얼굴형도 다르다. 경상도는 산천이 겹산이고 해서 사람들도 대개 사자 상으로 생겼거든. 충청도 사람들은 아주 이쁘장스럽게 쏙 빠져서 얼마나 양순하게 생겼나?
 
여기가 내 고향이지만 충청도 사람들하고는 급한 일은 못한다. 박력도 없다. 해서 박력 있고 의분심 공분심이 더 출중한 사람들하고 일을 해야 되겠다 하고 경상도 사람들하고 악수를 해서 판을 거반 다 짰다. 허나 충청도가 내 고향인데 내던지는 수가 있나? 그래서 그 다음에 했는데, 그래서 여기는 10년 이상이 늦은 데다. 여기를 와서 보면 다 똑같은 신도들인데 낯이 그렇게 설다. 고향 사람들이라 더 반가우면서도 그렇다. 그런 줄을 알아라. 여기는 내가 교육도 많이 시키지 못하고, 참 교리도 서투르다.
 
 
 
자손을 통해 열매 맺는 조상
상제님 말씀에도 “각 성의 선령신들이 천상공정에서 60년씩 공을 들였어도, 자기 쓸 자손 하나라도 살려달라는 티오를 얻지 못 했다.”고 하셨다.
조상이 공 들인 게 10년도 아니고 20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니고 60년이다. 왜 그 조상신들이 그렇게 목말라 하느냐?
 
알아듣기 쉽게 한 백 년 이백 년 한 오백 년 오래 묵은 고목나무를 보면, 속은 다 썩고 변죽만 붙어서 조금 살거든. 그게 얼마 가면 쓰러져서 없어진다. 그러고는 그 변죽에서 조그만 가지 하나가 나와서 그게 대타로 고목나무 노릇을 하는 것이다. 헌데 만일 조그마한 그 한두 가지를 요렇게 떼버리면 고목나무는 영 죽고 만다. 마찬가지로 조상신들은 자손에 의지해서 호흡을 한다. 자손이라는 건 사람의 숨구멍하고 같다. 이번에 천지에서 사람 씨종자를 추리는데 그 자손이 하나도 안 남고 다 없어져버리면 그 조상신도 다 없어져버린다. 조상신이라 하는 것은 신명이 있을 때까지는 자기 자손만을 위해서 산다. 딴 것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
 
이 세속 중생들이 그걸 볼 줄을 몰라서 그렇지, 사람은 두 내외가 결혼을 해서 자식 낳고, 키우고, 교육시켜서, 짝 붙여 놓고 죽는 것이다. 재산도 벌어서 자식에게 다 준다. 그렇게 부모가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것을 유산(遺産)이라고 한다. 귀할 귀(貴)에다가 책받침 하면 그게 끼칠 유(遺) 자다. 다시 정확하게 얘기하면 물려받을 유 자다. 조상의 재산을 물려받는 걸 말한다.
 
조상의 재산은 다만 그 혈통, 피붙이에게만 물려줄 수가 있고 피붙이만 물려받을 수가 있지, 피붙이가 아니면 물려줄 수도 없고 물려받을 수도 없다. 만일 유언이 있으면 딴 사람에게도, 척분에게도 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 재산으로 귀속되는 수밖에 없다. 법적으로 딴 사람에게 절대 주지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몸뚱이도 조상에 대해 유체(遺體)라고 한다. 끼칠 유, 몸 체. 5천 년 6천 년 전 처음 할아버지, 시조 할아버지서부터 물려받은 몸뚱이라는 말이다. 우리 몸뚱이는 조상한테서 물려받은 것이다. 그것이 이번에 열매를 맺는다.



신명을 해원시켜야 그러면 신명이라는 것을 누가 본 사람도 없는데, 신명이라는 게 뭐냐?
사람은 육신이 있는 사람이고 신명은 육신이 없는 사람이다. 육신이 없으니 뵈지만 않을 뿐 사람하고 똑같다. 우리도 영혼이 있잖은가? 마음, 생각, 영신. 이 영신이 없을 것 같으면 죽어버린다. 여기 누구도 다 자기 생각, 영신, 영혼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자기의 영혼을 보는 사람 여기 하나도 없지? 내가 무시하고서 얘기하나? 자기 영혼 보는 사람 손 좀 들어봐. 하나도 없지? 그게 바로 신이다. 죽으면 이 몸뚱이는 없어져도 자기 영신은 그냥 있다. 영신은 자기 닦은 바에 따라서 천 년도 가고 만 년도 간다.
 
 
신명 해원공사
육신이 없는 사람인 원한 맺힌 신명이 이 하늘땅 사이에 가득히 찼다. 그 신명들을 해원시켜주지 않으면, 그들이 살아서 못다 한 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좋은 세상을 만들 수가 없다.
그래서 상제님이 그 신명들을 전부 불러들여서 신명세계를 조직하고 거기서 세상 둥글어갈 프로그램을 짜셨다. 그리고 원신을 이 세상 둥글어가는 데에 투사(投射)를 하셨다. 그걸 학술용어로 얘기하면 세운(世運)이라고 한다. 또 역신은 내적으로 우리 증산도 도운(道運) 둥글어가는 데에 투사를 하셨다. 그렇게 해서 공사내용을 크게 세운공사 도운공사 두 가지로 대분할 수가 있다. 외적으로는 세상 둥글어갈 공사, 내적으로는 도운 둥글어가는 공사, 상제님이 그 틀을 짜놓으셨다.
 
그런데 상제님은 “파리 죽은 귀신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다.”라고 하셨다. 하늘땅 사이에 가득히 찬 신명들이 조금도 원망이 안 붙게, 아주 흡족하도록 그렇게 공사를 보셨단 말이다. 살아서 못다 한, 그 한 맺힌 것을 죽어서 신명계에서라도 “자, 이만하면 내가 살아서 못다 한 한이 충분히 풀렸다.”고 할 만큼, 천리와 지의와 인사에 합리적인 최선한 방법으로써 천지공사를 보셨다.
 
 
천지공사 그대로 둥글어간다.
상제님이 거기서 프로그램, 시간표, 이정표 짜놓으신 그대로, 지금 이 세상이 둥글어간다. 그것을 이름하여 가로되 천지공사다.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신 그 프로가 둥글어가는 것이다. 알기 쉽게 얘기하면, 지금 저기에 촬영기가 뻗쳐져 있거든. 요 눈썹 하나, 요 머리털 하나까지 다 찍고 앉았다. 저게 원판인데 저걸 인화지에 갖다 대면 복사가 돼서 그대로 나온다. 그게 머리털 하나도 안 틀린다. 그러니까 상제님이 신명세계에서 프로그램 짜놓은 것이 원판이라고 할 것 같으면 인간 세상에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표출되는 것은 복사를 해놓은 것이다. 아주 알기 쉽게 얘기하려니까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거든. 이만하면 누구도 다 짐작이 될 게다.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이념이라는 것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해서 상제님이 천지공사에서 짜놓은 틀을 알 것 같으면 이 세상이 어떻게 둥글어갈 것이다 하는 것을 안다. 여기 앉았는 증산도 종도사가 지금 여든세 살이다. 아주 옛날 사람이다. 여기 앉았는 사람들 어지간하면 다 내 손자뻘이다. 내가 이 나이를 먹으면서 상제님 진리와 이 세상 둥글어가는 프로를 지켜보는데, 천지공사에서 상제님께서 틀 짜놓으신 그대로 이 세상에 표출이 된다.



남조선 공사


헌데 나는 왜 그런지 어려서부터 상제님 진리를 알았다.
우선 쉽게 예를 들면, ‘만국활계남조선(萬國活計南朝鮮)이요 청풍명월금산사(淸風明月金山寺)더라.’ 일만 나라의 살 계획은 오직 남쪽 조선이요, 맑은 바람 밝은 달에 금산사더라. 내가 그 글귀가 하도 좋아서, 아홉 살 먹어서 모필로 입춘서를 써서 입춘날 상기둥 나무에 붙여놨었다. 그때 남조선 북조선이 어디 있나? 상제님 말씀 그대로 남조선 북조선이 생기지 않았는가?



또 “우리 일은 남조선 배질이라.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이 배를 배질하고 전명숙이 도사공이 되었느니라. 상제님께서 혈식천추 도덕군자의 신명들에게 어떻게 하면 혈식천추 도덕군자가 될 수 있냐? 하고 물어보니까 그 신명들이 상제님께 대답하기를 모두 ‘일심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한다.”
 
일심을 가지지 못하면 이 배를 타지 못한다, 증산도 신앙을 못한다는 말씀이다. “일 안 되는 것을 한하지 말고 일심 못 가진 것을 한해라. 복록을 내가 맡았으나 일심 가진 자가 적어서 태워줄 곳이 적음을 한하노라. 누구도 일심만 가질 것 같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고루 태워준다.” 이것이 상제님 공사내용이요 상제님 말씀이다.
 
 
증산도는 생명의 다리
상제님은 요 세상이 이렇게 둥글어가도록 틀을 짜놓으셨다. 했기 때문에 하늘도 우리 상제님의 하늘이요 땅도 상제님의 땅이요, 이 천지간,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는 65억 인류도 다 상제님의 사람이다. 그렇건만 이 세상 사람들은 상제님을 모른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이번에는 누구도 상제님 진리권에 수용을 당해야 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장이라도 상제님 품안에 안겨야만 선천세상에서 후천세상으로 건너갈 수가 있다. 지나간 세상과 앞으로 다가오는 세상, 그 두 세상은 같은 것 같으면서도 다르다. 봄여름 세상과 가을겨울 세상이라는 것은 두 쪽으로, 음양으로 갈라져 있다. 그러니까 증산도는 이 선천세상에서 앞으로 다가오는 후천세상을 건너가는 가교(架橋), 생명의 다리다. 누구도 이 증산도의 생명의 다리를 타고서만 후천세상, 상제님 세상, 현실선경, 조화선경, 지상선경, 살기 좋은 세상, 상생의 세상을 건너갈 수가 있다. 그렇건만 이 세상을 사는 중생들은 그걸 모른다




증산도를 알려야
헌데 문제는 그네들도 상제님 진리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65억 전 인류가 상제님 진리를 알아야 한다. 제군들이 그들에게 상제님 진리를 대주는 길잡이가 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렇게 교육을 시키고 있다. 65억 전 인류의 길잡이, 근래 말로 가이드가 되어주라는 것이다. 증산도의 존재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선천세상에서 후천세상을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 우리는 다 같이 전 인류가 이 생명의 다리를 타고 건너가게끔 길잡이가 돼야 한다.
 
요새 내가 텔레비전으로 국회의원들 싸우는 것을 보면서 ‘저 사람들이 상제님 진리를 알 것 같으면 저렇게 하라고 해도 안 할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본다.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순천자(順天者)는 흥(興)하고 역천자(逆天者)는 망(亡)이라. 하늘이치를 순하게 잘 받아들이는 사람은 성공을 하고 하늘이치를 거스르는 사람은 죽는 수밖에 없다. 이치를 어떻게 거스르나? 이 시간에 종도사가 이렇게 우리 신도들을 교육시키고, 우리 신도들이 교육을 받아서 신앙을 알차게 하려는 것은, 다 같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전 인류를 위해서, 상제님 진리의 길잡이가 되겠다는 것, 그것 때문이다.



천지에 쌓는 불멸의 공 개벽하는 세상에 길잡이가 돼서 상제님 진리권으로 많은 사람을 인도할 것 같으면 그게 천지에 공 쌓는 것이다. 죽는 세상에 사는 진리를 전해주는데 그 이상 더 고마울 게 어디 있나? 또 그 공은 누구도 못 뺏어가는 것이다.


암행어사제도
또한 앞 세상은 한 번 여물면 그만이다. 그래서 상제님 진리는 군사부 진리다. 어떻게 군사부 진리가 될 수밖에 없느냐? 이번에 개벽을 하는데 상제님 진리, 의통이라는 화권으로써만 살 수 있다. 허면 상제님의 화권, 의통이 어떻게 된 거냐? 내가 그걸 한번 설명해 줄 테니 들어봐라. 예컨대, 기존의 정치하는 임금님이 ‘내 영토권에 사는 백성들을 어떻게 하면 고약한 위정자들한테 착취 안 당하고 편안하게 잘 살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을 백 년 이백 년 삼백 년, 세세연년 연구를 하다 보니까 ‘암행어사제’라는 게 생겼다. <춘향전> 같은 걸 봐서 대략 알잖은가?


의통은 마패와 같은 것
그런데 암행어사의 마패라는 게 어떻게 생겼냐 하면, 쇠짜배기에다 말을 그린 것이다. 말을 한 필 그린 것도 있고 두 필 그린 것도 있고 세 필 그린 것도 있다. 말은 한 도, 두 도, 세 도, 그런 걸 표시하는 것이다. 상감님이 그것을 주면 어사가 그걸 간직하고 돌아다니다가 출두를 하게 되는 것이다. 헌데 어사가 출두를 하면서 “어명(御命)이야” 한다. 상감님 어 자 아닌가. “상감님의 명령이다.”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암행어사는 상감님의 대타로, 상감님의 대권을 가지고 출두를 하는 것이다. 상제님의 ‘의통’이라는 것은 바로 그 암행어사의 마패하고 같은 것이다.


의통은 상제님 천지공사에서 신명세계의 특권이다. 해서 그 의통으로써 사람을 살린다. 상제님 진리, 상제님의 천지공사 내용이념이 전부가 다 그렇게 되어져 있다. 상제님 진리는 12만9천6백년 만에 오직 한번 있는 일이다. 천지가 한 번 둥글어가는 시간이 12만9천6백년이다. 일 년 초목개벽은 12만9천6백도, 대우주 천체권이 한 바퀴 둥글어가는 건 12만9천6백년. 똑같잖은가? 헌데 하늘땅 생긴 이후로 12만9천6백년 만에 가장 비전 많은 일이 상제님 일이다. 천지에서 사람농사를 지어서 그 알캥이, 씨알 맺는 걸 거둬들이는 때에, 그 씨알 거둬들이는 것보다 더 중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개벽은 피할 수 없는 천지이법
내가 상제님 진리는 군사부 진리라는 얘기를 하다가 이런 얘기 저런 얘기가 나오는데, 천지에서 다 죽이는 때에 상제님 진리인 의통이라는 화권을 가지고 사람을 살린다. 천지에서 죽인다는 게 무엇인가? 알기 쉽게 얘기하면, 지구 일 년도 초목농사를 지어서 알캥이를 여물고 가을에 가서는 상설이 와서 풀 한포기 안 남기고 다 쳐넘겨 버린다. 그러면 초목들의 위치에서 볼 때 “상설아, 오지 말아라. 우리가 다 죽는다.” 하면 상설이 안 오겠네?
 
이 대우주 천체권, 천리라 하는 것은 그런 것하고는 하등 관계가 없다. 천지이법에 의해서 만유의 생명이 왔다 가는 것이다. 천지라 하는 것은 봄에 물건 내고 가을철에는 죽여 버리는, 생사양로밖에 없다. 묶어서 얘기하면 봄철엔 내고 가을철엔 죽이고, 내고 죽이고 내고 죽이고, 백 번 천 번 만 번 그것만 거듭하는 것이 천지의 이법이다.
 
 
군사부일체의 후천문화
그래서 이번 개벽하는 때에는 상제님 이법에 의해서 살아남는다. 앞으로 후천세상은 오만 년 동안 상제님 진리로써 통치를 하게 된다. 상제님 진리 이상 더 나올 것이 없다. 상제님 진리, 하나인 진리 속에 정치 종교 경제 문화 사회 각색 부문이 전부가 다 함축돼 있다. 하나인 진리, 열매기 진리, 성숙된 진리, 통일된 진리. 상제님 진리는 그런 진리다.
허면 어떻게 해서 오만 년이냐? 이 대우주 천체권이 추워서 동결돼서 일체 생물이 멸망당할 때까지 꼭 오만 년이 남았다. 이 오만 년 동안 상제님의 통일된 진리, 하나인 진리로써 통치를 한다. 열매는 한 번 여물면 그만이지 겨울에도 또 여무는가? 상제님의 진리 하나 가지고 세상은 오만 년 끝을 마친다. 상제님 진리로써 도성덕립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만 년 동안 상제님은 통치자, 상제(上帝), 군왕(君王), 천황(天皇)이시다.
 
또 상제님 진리를 믿으니까 상제님은 우리의 스승도 되신다. 그리고 생아자(生我者)도 부모요 양아자(養我者)도 부모라, 나를 낳아준 것도 부모지만 나를 살려준 것도 부모라고, 죽는 세상에 상제님 진리로 살았으니 상제님이 부모 아닌가? 상제님 진리는 통치자[君]도 되고 스승[師]도 되고 아버지[父]도 되는 것이다. 틀이 그렇게 되어져 있다. 여기 있는 우리 신도들도 진리의 길잡이가 돼서, 포교를 많이 해서 사람을 많이 살려줄 것 같으면, 그 신도들의 군사부가 된다. 그 틀, 체제, 바탕이 역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건 바꾸지도 못한다.
 
선천 세상에는 바꾸기 위해서 갖은 못된 짓을 다 한다. 정치체제로 말하면 여태까지 발전된 게 민주주의다. 헌데 이 시장경제도 몹쓸 게 그렇게 많다. 통일경제, 공산주의보다는 나을 테지. 하지만 자본주의도 부익부빈익빈 해서 돈 많은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경제망으로 옭아버린다.
민주주의라는 게 2,500년 전부터 나왔는데 그때 무슨 소리를 했냐 하면, 천하(天下)는 천하지천하(天下之天下)요 비일인지천하(非一人之天下)라. 세상은 세상 사람의 세상이지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의 세상이 아니란 말이다. 맞잖아?
 
또 삼인지행(三人之行)에 필종이인지언(必從二人之言)이라, 세 사람이 가는데 두 사람이 좋다고 하면 두 사람의 말을 좇아야 된다고 했다. 그게 민주주의 아니겠어? 그때라고 해서 그런 진리가 없어서 잘못한 것도 아니다. 헌데 상제님 세상에는 한 번 정해지면 그 틀이 바꿔지지 않는다. 군사부 진리가 어떻게 바꿔지나? 아니, 에미 애비는 만 년 가도 에미 애비지, 한 천 년이나 오백 년 후에 “야, 네가 아버지 해라, 내가 자식노릇 하마.” 그것 안 되어지잖아? 이치에 맞지 않는 거니까. 천리를 어떻게 바꿀 수가 있는가.



사람 많이 살리는 길, 화합하기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죽는 세상에 살리는 길로 안내하는 길잡이가 되자는 것이다. 길잡이가 돼서 많은 사람을 살려야 한다. 신도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민족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인간이라는 대의명분에 입각해서, 우리 민족 우리 겨레를 많이 살리고, 사회 속에서 많은 사람 살리고, 전 인류를 많이 살려야 한다. 우리는 참 하나님이 이 세상에 사람 살리러 오셔서 천지공사로써 틀 짜놓은 이 기치를 높이 들고서, 유형도 다 바치고 무형도 다 바쳐서 사람을 많이 살려야 한다.
그 사람 많이 살리는 방법을 내가 하나 얘기할 테니 들어봐라.





택국이 되라
사람은 택국(澤國)이 돼야 한다. 못 택 자, 나라 국 자. 커다란 못이 되면 그 못 속에는 갈파리서부터, 깍다귀서부터, 하루살이서부터, 개구리, 배암, 만유의 생명이 거기로 다 뭉쳐든다. 그래서 못을 나라 국 자를 붙여서 택국이라고 한다. 허면 사람인지라 하다못해 커다란 못 하나 정도는 돼야 될 것 아닌가? 그런 아량도 없이 천하사를 한다고 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다 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런 택국이 돼야 한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것 같으면 다 봉사한 사람들이다. 봉사라 하는 것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이다. 자아, 나를 중심해서 생활을 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서 사회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봉사한 사람들, 그 사람들을 도덕군자니 훌륭한 사람이니 뭐니 뭐니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내 비위를 맞춰다오? 그건 만고의 소인배다. 어느 놈이 제 비위 맞춰주기 위해 생겨났나? 그러면 안 된다.
생각을 해 봐라. 남의 비위 맞추기 위해서 이 세상 생겨난 사람이 어디 있어? 그런 사람은 하나도 없다.
 
내가 살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적응을 해야 한다. 내외간에도 그렇다.
남을 위해 봉사를 할 것 같으면 “아, 저 사람은 참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서 뭇 사람이 쫓아온다. 내가 지도자가 되기 싫어도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 그렇잖은가? 상제님은 우주의 주재자로서 참 하나님이시다. 헌데 우리 상제님도 인간인지라 좋은 장가들어서 잘살고도 싶으셨을 게고, 편하고도 싶으셨을 게고, 비단옷도 입고 싶으셨을 게고, 고량진미도 자시고 싶으셨을 게다.
 
하지만 상제님은 동가식서가숙(東家食西家宿), 동쪽에서 밥 먹고 서쪽 집에 가서 주무시고. 잘 데가 없으면 여름철에는 바위 밑 같은 데 가서도 주무시고, 겨울에 추울 때는 초빈터에서도 주무셨다. 초빈터 있잖은가? 관을 놓고 이엉 같은 걸로 엮어서 덮어놓은 곳 말이다. 그전에는 그런 게 있었다. 헌데 상제님이 거기 가서 송장 끌어안고도 주무시고 그랬다. 아니, 천지공사를 보시는데 그렇게 고행을 않고서 하는 수가 있나. 우리는 그런 참하나님을 모신, 그 일을 하는 신도다.




실천역행하라 상제님 말씀이 “모사(謀事)는 재천(在天)하고 성사(成事)는 재인(在人)이라. 내가 천지의 둥글어가는 일은 이렇게 이렇게 프로를 이미 짜놨으니 그 일을 이루는 것은 너희들에게 맡긴다. 일을 설계한 것은 하나님 내가 했다.” 고 하셨다. 모사는 재천, 하나님이 모사를 하셨다. 그리고 성사는 재인이라, 나를 믿는 내 신도들이 진리의 길잡이가 돼서 세상 사람들을 규합해서 신도를 많이 만들라는 말씀이다. 상제님 진리를 전해서 성사시키는 것은 너희들에게 맡긴다 하는 말씀이다.
 
여기는 개척을 하는 데지 기복신앙 하는 데가 아니다. 진리를 믿어서, 진리를 내 것으로 만들어서, 생활화 체질화시켜서, 상제님 진리를 바탕으로 실천역행해서, 세상 사람을 살려야 되는 데다.
 
또 진리를 암만 많이 따 넣어도 현실에 옮기지 못할 것 같으면 소용이 없다. 지식이라 하는 것은 현실하고 연결되지 않을 것 같으면 다만 이론일 뿐이요 공염불일 뿐이다. 지식이 암만 많으면 뭘 하나? 실상하고 맞지 않는데. 지식이라 하는 것은, 이상이라 하는 것은, 현실하고 연결이 돼야만 산지식이 되는 것이지, 이상과 지식이 암만 많고 훌륭해도 현실과 연결이 되지 않으면 죽은 지식일 뿐이고 죽은 이론일 뿐이다.





생명을 초월해서 최후의 일순까지
나는 어려서부터 상제님 사업을 한다고 전부를 다 바쳤다. 내가 3대째다. 내가 부자 소리 듣고 그런대로 잘 살았다. 헌데 상제님 사업에 다 바쳐버렸다. 알거지도 돼 보았다. 생명을 초월해서 하는 것이다. 아니, 큰일 하는 사람이 그래야 될 것 아닌가? 혈심, 피의 정성을 가져야 한다. 독행천리(獨行千里)에 백절불굴(百折不屈)이라. 혼자 천리를 가는데 백번 자빠져도 굽히지 않는다. 털고 일어나서 최후의 일순까지 가고 또 가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 세상 일 되는 법이 어디에 있나?
 
 
의인지사가 많이 나온 충청도
또 충청도의 충은 충성 충(忠) 자다. 충청도라고 하는 데는 역사적으로 의인지사들이 많다. 여기 홍성 홍북면이라고 있다. 노은이라고 하는 데, 성삼문이 거기 분이다. 근래 또 백야, 김두한이 아버지 김좌진 장군도 홍성 출신이고. 그거 다 들려면 한도 없다.
헌데 충청도 사람들은 왜 그런지 결심시키기가 그렇게 어렵다. 오죽하면 내가 용수철 고무줄 사람이다 하는 소리를 다 했다. 헌데, 한번 하겠다 하고 달려붙으면 어느 도 사람보다도 생명을 바치는 데가 또 여기다.
 
내가 백마고지에서 싸운 장병들 얘기를 한번 들어봤다. 경상도 군인들을 갖다 붙여놓으면 냅다 소리만 요란하게 “와” 하고 만다네. 헌데 충청도 사람은 “꼭 그걸 찾아야 됩니까?” 해서 “아무렴 찾아야 되지.” 하면, 결국 충청도 사람들이 그걸 빼앗았다고 한다. 내가 충청도 사람이라고 해서 하는 소리가 아니다. 그렇건만, 충청도 사람들하고는 당최 일하기가 어렵다. 시간 끌고 기름쟁이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충청도 사람들이 얼마나 충혼(忠魂)이 뜨거운가? 충성 충 자, 혼이라는 혼 자. 인제 그런 얘기는 그만하고.
 
 
조상을 잘 받들라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 제일 귀중한 게 뭐냐 하면 사람이다. 그런데 내 자신에게 이 세상에서 뭐이가 가장 존귀하냐 하면 나거든, 나. 내가 아주 가장 존귀한 것이다. 어째서 그러냐 하면 내가 있음으로써 부모도 있고 형제도 있고 처자도 있고 국가도 있고 민족도 있고 사회도 있고 모든 만유가 있는 것이다. 내가 없으면 아무 것도 있을 수 없잖은가. 이 대우주 천체권 내에서 내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있어야 부모 형제 처자 국가 민족 사회 모든 만유가 다 있단 말이다. 나라는 자신이 그렇게 소중한 것이다. 누구도 다 그렇다.
 
그러면 가장 존귀한 나를 낳아준 사람이 누구냐? 내 조상이지? 우리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 그렇게 쭉 올라가면서 가장 소중한 내 몸뚱이를 낳아준 것이 누구냐 하면 바로 내 조상이다. 하니까 조상을 잘 받들 줄 알아야 한다. 조상을 우습게 아는 사람은 누구도 진리 속에서 용서받지 못할 사람이다.
제 조상의 유전인자, 그 핏줄을 빌려서 제 몸뚱이가 생겼다. 제 조상이 도둑놈이 됐든지 백정놈이 됐든지, 뭐를 했든지 하여튼 제게 대해서는 조상이다.
 
하나 예를 들어서, 문왕이라고 하는 절대적인 성자가 있었다. 헌데, 그는 하늘제사를 지내려면 자기 아버지를 천지하고 짝해서 같이 제사를 지냈다. 문왕의 아버지가 임금 왕(王) 자, 말재 계(季) 자, 왕계(王季)다. 자기 아버지 왕계를 천지하고 짝해서, 동위로 놓고서 제사를 지냈다.
그랬으나 인류역사를 통해서 그것 잘못됐다고 얘기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 사람에 한해서는 가장 소중한 분이 제 조상이니까, 하늘보다도 더 소중한 분이니까 말이다. 제 조상이 있음으로써 제 몸뚱이도 있고 제 몸뚱이가 있음으로써 우주만유 뭣도 다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성도들은 절대로 자기 조상을 잘 받들어라. 내 조상이 내게 대해서는 가장 끔찍하고 존귀한 분이다. 내 조상으로 인해 내 자신이 대우주 천체권 내의 주체도 되는 것이다.


상제님 진리는 절대로 공명정대(公明正大)하고, 불의를 뿌리 뽑고 정의를 규명하는 진리다. 또 대자연 섭리라 하는 것은 지극히 공명정대한 것이다. 공명정대한 진리 속에서 공명정대하게 살아야 되지, 삐꾸러지게 살려고 할 것 같으면 절대로 진리가 용서를 않는다. 천작얼(天作孼)은 유가위(猶可違)어니와 자작얼(自作孼)은 불가활(不可活)로, 획죄어천(獲罪於天)이면 무소도야(無所禱也)라. 사람은 하늘에 죄를 지을 것 같으면 빌 데도 없다. 하니까 절대 우리 성도들은 바르게 살아라. 그리고 삐꾸러진 행위를 하고 도장에서 부정을 하는 사람은 여기 앉았는 종도사가 그냥 두들 않는다. 내가 수용을 안 한다. 내가 먼저 구호를 외칠 테니 따라 해라.
 
 우리는 개척자다.
 (복창) “우리는 개척자다.”
 우리는 개척자다.
 (복창)“우리는 개척자다.”
 우리는 개척자다.
 (복창)“우리는 개척자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창)“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창)“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복창)“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멸사봉공 하자.
 (복창)“멸사봉공 하자.”
 멸사봉공 하자.
 (복창)“멸사봉공 하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길잡이가 되자.
 (복창)“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길잡이가 되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길잡이가 되자.
 (복창)“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길잡이가 되자.”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길잡이가 되자.
 (복창)“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길잡이가 되자.”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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