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rch 25, 2017

조선시대 최강의 살수집단 항왜병

임진왜란 때 상당수의 왜군들이 투항했습니다

당시 왜군들의 엄청난 근접전 능력을 사료에서는

"아군이 칼집에서 칼을 뽑아보기도 전에 왜군의 칼에 두동강이 났다"

"판옥선에 한명의 왜군이라도 올라타면 조선군 열이라도 당해내지 못한다"

라고 할만큼 조선군한테는 공포의 대상이였습니다


이에 선조는 우리도 근접전 전문부대를 만들어라고 영을 내리고

창검술을 전문으로 살수부대를 만들었지만 이를 본 투항한 왜군장수한테

"어린애 놀이수준에 지나지않다" 라는 혹평을 들었습니다


선조는 또다시 충격을 먹고 투항한 항왜에게 왜검술을 배우도록 하지요

다음은 훈련도감에 내린 선조의 교지입니다

“우리나라의 습속은 남의 기예 배우기를 좋아하지 않고 도리어 비굴하게 여긴다. 왜인의 검술은 대적할 자가 없다. 항왜(降倭)가 많이 나왔을 때 검술이 극히 묘한 자가 많아, 이들을 장수로 삼아 검술을 배우라고 친교를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끝내 실시하지 않고 모두 흩어 보냈으니 탄식할 일이로다. 별도로 한 장수를 뽑고 아이들 약간 명을 선택하여 왜인의 검술을 주야로 익히면, 이는 적국의 기예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인데 어찌 유익하지 않겠는가.” 



실제로 항왜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았습니다

잘 알다시피 울산성 전투를 비롯해 임진왜란 여러곳에서 맹활약했으며

그 눈부신 근접전 전투기술에 명과 조선의 장수들이 혀를 내두르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지요


전쟁이 끝나고 나서는 

사야가 김충선처럼 조선에 완전히 동화된 왜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언어 복장 풍습을 유지하면서 살아 조선사람들과 여러 마찰도 있었습니다

일례로 벌건 대낮에 한양도성내에서 집단으로 칼을 차고 다니니

여기저기서 민원이 들어왔지만 칼은 무사의 자존심이라고 하여 끝까지 칼을 반납하기를 거부했다네요



북방여진족을 상대하기위해 항왜병으로만 구성된 부대가 만들어졌는데

소수였지만 대단한 전투력을 지녀 당시 총사령관 이괄은 이 항왜병 부대를 그야말로

애지중지 아꼈고 항왜병들 역시 이괄장군한테 다이묘 모시듯 극진한 충성으로 보답했습니다

후에 이괄이 반란을 일으켰을때 이 항왜병들은 또한번 눈부신 실력을 뽐내는데

거의 모든 전투에서 이 130명의 항왜병들은 가장 선봉에서 서서 빗발치는 화살과

총탄사이로 돌진해 조선토벌군들을 엄청나게 도륙을 내버립니다


이괄의 난 당시에 이 항왜병들의 반란토벌군한테는 공포의 대상이였고 항왜병들이 나타나면 총한방 활한번 못쏘고

흩어지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죠


당시 유명한 항왜로는 서아지 / 고효내 / 사쇄문 등이였는데

특히 서아지는 별명이 비왜(飛倭) 

단어 그대로 날으는 왜병이라는 말처럼 전쟁터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다네요


이괄의 난이 실패로 끝나고 이괄의 북방군이 괴멸하면서 대부분의 장병들이 도망치고 흩어졌지만

이 130명의 항왜병은 마지막까지 단한명도 이괄장군 곁을 떠나지않고 싸웠다니

주군에대한 충성심또한 대단했다고 합니다



항왜병들의 근거지가 되었던 밀양의 항왜마을이

이괄의 난을 통해 크게 위축되고

조선군관들에 의해 보급되었던 그 유명한 왜검술도

숙종대에 이르러선 명맥이 끊기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최강의 살수집단 항왜병이 기존 계획대로 

청과의 일전에 쓰이지 못하고 이렇게 사라진것은 조선으로서도 큰 손실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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